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갸, 직업이 뭐이가?
표재순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갸, 직업이 뭐이가?》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했던 연출가 표재순의 삶을 돌아보는 회고록이다. 고(故) 장민호 배우가 표재순 연출가를 두고 “갸 직업은 무엇이냐”고 물었던 말이 책의 제목이 되었는것 같다. 실제로 표재순은 한 가지 장르에 머물지 않고 연극과 방송 드라마, 뮤지컬, 오페라, 대형 행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무대를 연출했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의 본래 직업은 과연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배우로 시작해 연출가의 길을 걸었던 그의 인생은 결국 자신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해 온 시간이었다. 연극이 필요한 곳에도, 방송과 드라마가 필요한 곳에도, 뮤지컬과 오페라가 펼쳐지는 곳에도,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대형 행사 무대에도 그는 있었다. 무대가 있는 곳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역시 1988년 서울올림픽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굴렁쇠 소년’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개막식에서 비둘기를 등장시키기 위해 어떤 고민과 준비가 있었는지를 읽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다. 세계적인 행사였던 만큼 완벽하게 준비된 무대였을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와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그런 상황들을 하나씩 해결하며 행사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보면 표재순에게 연출이란 단순히 무대의 장면을 구성하는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연출이라는 일은 혼자서 자신의 능력만으로 완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무대 위에는 배우가 있고, 무대 뒤에는 스태프가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나의 장면이 완성된다. 결국 좋은 연출가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능력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능력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인맥의 기록이 아니라, 표재순이라는 연출가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무대를 만들어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처럼 느껴진다. 그가 기억하는 사람들은 곧 그가 살아온 무대의 흔적이고, 그들과 함께 만들어낸 장면들은 그의 삶을 증명하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결국 표재순의 직업은 무엇이었을까.
책을 읽고 나면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의 직업은 ‘연출가’였다. 다만 한 가지 장르만을 고집하는 연출가가 아니라, 시대와 무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형식을 경험하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간 연출가였다. 한 우물만 깊게 파는 방식이 아니라 여러 우물을 경험하면서 얻은 사람과 이야기, 그리고 경험을 하나의 무대로 만들어낸 사람이었다.
그가 만들어낸 장면들은 단순히 눈앞에서 사라지는 공연만은 아니었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때로는 시대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달했으며, 때로는 자신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방식이 되기도 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무대라는 공간에 담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을 해온 셈이다.
그래서 《갸, 직업이 뭐이가?》는 단순한 연출가의 회고록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자신의 직업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자신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를 들려주는 한 인생 선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양한 경험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만들어낸 무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삶의 깨달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직업으로 삼았느냐보다 그 직업을 통해 어떤 장면을 만들어냈느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표재순의 70여 년 인생은 수많은 무대를 거쳐왔고, 그 무대마다 사람과 시대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장면들은 그의 삶을 기억하게 하는 흔적이 되었고, 결국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무대가 되었다.
어쩌면 “갸, 직업이 뭐이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대답은 단순히 ‘연출가’라는 세 글자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 자체를 하나의 무대로 만들고, 그 무대 위에 수많은 사람과 시대의 이야기를 올려놓았던 사람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