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요코미조 세이시는 고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추리와 공포가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들을 주로 써온 작가다. 이번 작품 역시 그런 작가적 특징이 잘 드러난 소설로 미스터리하면서도 잔혹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잔혹함 조차 마치 신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해, 섬뜩하기보다는 오래된 전래동화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중 주인공 시나 고스케는 동료 오쓰코쓰와 함께 의사 우도가 거주하는 저택을 방문하게 된다. 그곳에는 우도의 조카 유미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저택은 이상하리만큼 정적에 잠겨 있다. 평화로운 여름휴가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정체불명의 노파(자신은 노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에게 "이곳은 피비가 내려 온통 새빨갛게 물들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을 들으며 불안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유미를 통해 우도 저택에 얽힌 이야기를 듣게 되지만, 그녀는 모든 진실을 말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찝찝함을 남긴다. 그리고 결국 사건이 터진다. 저택에 살고 있는지도 몰랐던 미남 청년 신주로가 우도 씨의 목을 베어 살해한 것이다. 이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시나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수사가 시작되지만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이때 등장하는 탐정 유리의 활약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마지막에 드러나는 반전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신화 속 신처럼 묘사되는 신주로는 실은 우도가 키워온 일종의 실험체라는 설정이다. 신화를 연상케 하는 그의 존재는 작품 전반에 독특한 분위기를 부여하며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삼은 우도의 잔인함은 단순한 범죄 그 이상의 도덕적 질문을 던진다.
인간을 극한 상황에 몰아넣는 잔혹한 실험의 산물로 결국 우도 자신의 잔인함이 그를 파멸로 이끈다. 우도가 왜 죽어야 했는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 여기에 담겨 있는 셈이다.
전통적인 추리물의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문체는 현대 독자에게도 가독성이 높고 이야기는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요코미 조세이시의 작품이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읽히는 이유를 이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