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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라스 캐슬
저넷 월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북하우스 / 2017년 8월
평점 :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저넷 월스의 회고록입니다. 그녀는 성공하고 저명한 저널리스트로 뉴욕의 고급아파트에 살고 있는 현재 그녀의 모습으로서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과거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 과거란 그녀의 비밀스런 사생활이 아니라 바로 그녀의 지난 어린 시절입니다. 그녀가 그동안 굳이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를 왜 다시 꺼냈는지 보다 아마 이야기를 꺼낸 자체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녀가 20여 년 동안 감추어두고 내놓지 않았던 그녀의 과거사들. 읽는 내내 이것이 정말 있었던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드라마에서나 봄직한, 아니 사실 드라마에서도 아주 막장 급에 속하는 이야기입니다. 드라마 상의 이야기라고 해도 그 부모 캐릭터는 분명 엄청난 비난과 질타를 받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로 그녀의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녀에게도 어릴 적 시간들이 잊히지 않을 만큼 강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유년시절을 마치 며칠 전에 겪은 일처럼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풀어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읽으면서도, 너무도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들 때문에,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것들이 일인칭 시점의 소설이 아닌가 가끔씩 헷갈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들이 나에게 닥쳤더라면, 내가 이런 환경에서 자랐다면 과연 나는 지금 어떠한 모습일까, 또 이러한 내 과거사와 유년시절,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을 용기 있게 고백할 수 있을까라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쉽사리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좋은 이미지들은 거의 셀 수 있을 만큼 떠올랐습니다. 거의 안 떠올랐다는 것이지요. 사실 책 표지에서는 그녀의 어린 시절을 '강렬하다', '창의적이다' 등의 수식어로 꾸미고 있지만, 이러한 표현에 제법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녀를 향한 부모님의 양육방식이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위와 같은 표현으로 미화한 것 같기도 하여 앞서 말한 것처럼 불편함이 약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제가 꽉 막힌 혹은 고지식하여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비롯하여 그녀의 형제자매들이 다쳤을 때 병원도 데려가지 않고 방치한 모습이나 사정상 그랬다고는 하지만 문도 제대로 잠기지 않는 트럭 뒤의 짐칸에 자녀들을 태우고 운전하는 모습 등은 결코 공감하기 힘들었습니다.
'병 주고 약 준다'라는 우리나라 속담은 이럴 때 쓰는 것일까요. 결핍과 모순 등으로 그녀를 힘들게 했던 것은 그녀의 부모님이었지만, 지금의 그녀가 있게끔 만들어준 것도 역시 그녀의 부모님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성인 동화이자 모험담 같았던 그녀의 어린 시절을 접했던 시간은 충격이기도 했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쉽게 잊히기 힘든 기억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