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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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누가사 사치오는 대학 시절 동기였던 다나카 나쓰코를 정말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엄청 드문 확률로 일어날 법한 상황으로 우연히 다시 만나 결혼을 했다. 그 후 약 10년 동안 나쓰코는 미용사로 일하며 사치오의 뒷바라지를 한다. 사치오는 나쓰코의 헌신적인 노력 끝에 작가로 데뷔하게 되고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며 명실공히 유명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작품 활동 뿐 아니라 티브이에도 자주 등장한다(예능 프로그램도 포함하여). 동시에, 사치오는 출판사 편집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나쓰코 몰래 그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

그러던 중 나쓰코는 친구 유키와 떠난 스키여행에서 타고간 버스가 사고가 나면서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사고 직후에도 사치오는 크게 동요하거나 슬퍼하지는 않는다. 그저 자신이 가진 사회적 위치 때문에 '슬픈 남편 코스프레'를 할 뿐이다.

 

한편, 사치오과 관계를 맺고 지내면서도 일말의 죄책감 혹은 부끄러움을 갖고 지내던 내연녀는 사고 직후 그 와의 관계 도중 나쓰코의 죽음에 대한 사치오의 태연함에 크게 충격을 받고 스스로도 그에게 나쓰코처럼 큰 의미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결국 그 둘의 관계는 끝이 난다. 그 후에도 사치오는 대외활동을 할 때면 가족을 잃은 큰 시련을 당한 비련의 인물을 연기한다.

 

사치오는 나쓰코와 함께 스키여행을 떠난 친구 유키의 남편인 오미야 요이치를 (요이치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노력 끝에)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자식이 없으면서 생활도 여유 있고 자유로운 자신과는 달리 아이가 두 명에 운송업 때문에 장시간 집을 비워야 하는 요이치와 그 자식들 신페이와 아카리를 돕고 그들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죽은 아내 나쓰코의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사실 위에서 말했듯이, 나는 사치오가 아내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죽음에 대해서 전혀 슬프거나 상실감을 느끼지 않았고 그저 슬픈 척을 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의 나쓰코에 대한 마음이 식었던 것은 맞지만 그가 아내의 죽음에 대해 슬프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미처 그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것이었다. 슬프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슬픔을 못 느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수없이 들어왔던 진리를 새삼 상기하게 됐다. 바로 '있을 때 잘하라'는 말 말이다. 나쓰코처럼 오랫동안 자신을 뒷바라지 해준 헌신적인 사람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인식조차 제대로 못한 사치오처럼 나쁘게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두들 그 무엇이던 간에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 혹은 사물의 소중함과 고마움 또는 가치를 잊고 지내는 것 같다.

 

할 수 있을 때, 가까운 곳에 있을 때 좀 더 주변에 대해 감사하고 받은 사랑과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한 번 더 바라보고, 한 번 더 안아주고, 한 번 더 사랑하고, 한 번 더 마음을 표현하고 베풀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좋겠고, 그 누구보다 먼저 그러한 내 자신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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