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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 데이즈
혼다 다카요시 지음, 이기웅 옮김 / 예담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혼다 다카요시. 책의 표지에 쓰여 있는 그의 이름을 처음 보고 왠지 낯익다는 느낌을 가장 먼저 받았다. 분명 그의 작품 중 아는 것은 하나도 없는데, 이상하리만치 낯설지 않은, 오히려 친근함마저 느껴지는 이름이었다. 보통 작가의 이름에 따로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고, 이름이 주는 어떤 느낌을 따로 느끼려고 노력하는 편도 아닌데 이번엔 유난히 무언가가 느껴졌던 것 같다. 아무튼 그의 작품은 확실히 이번에 처음 접한 것이었다. 처음 접하는 작가였기 때문에, 그 만큼 그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솔직히 커다란 기대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어디 한번 볼까?’라는 생각으로 그의 책을 손에 덥석 쥐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장까지 다 읽고, 책을 덮으며, 책의 표지를 쓰다듬는 순간, 그가 이미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중 한명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파인 데이즈 Fine Days》는 총 네 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있는 단편 소설집이다. 가장 먼저 책의 이름을 장식한 [Fine Days]. 다음으로 [Yesterdays] 그리고 [잠들기 위한 따사로운 장소]와 마지막 [Shade]까지의 순서로 짜여 있다. 제일 처음에 만날 수 있는 [Fine Days]를 읽고서 ‘역시~ 가장 먼저 배치해놓고 책의 이름까지 차지할 만하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섣부른 판단이었다. 뒤에 나머지 세 이야기들도 [Fine Days] 못지않게 정말 재밌고 좋았던 것이다. 어느 하나도 뒤처지거나 빠지지 않고 하나같이 내 마음에 쏙 드는 단편들이었다.
‘소설’이라는 갈래이고, 또 이 책을 보게 될 분들의 책 읽기의 재미와 흥미를 반감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들의 등장인물이나 줄거리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고 싶지 않다. 직접 보기를 권하고 싶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딱 이럴 때 필요한 것 같다. 정말 말이 필요 없다. 보면 내가 왜 이렇게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하는지 이해하시는 분들이 꽤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서늘하면서도 따듯한 이야기다.
역시 소설이라는 허구의 이야기인 만큼 각 이야기마다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이 이야기는 잠깐 해도 될 것 같다.) 그런 모든 장치들이 하나도 거부감 같은 것이 들거나 하지 않았다. 작가 역시 그 부분에 이야기의 중심을 두었을 테니만큼, 흥미롭고 빠져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요소라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어떤 식으로 봤을 때도 그렇게 많은 책을 본 것도, 많은 작가를 접한 것도 아니지만 이렇게 처음 접하는 작품을 보고 쏙 마음에 들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고.
‘청춘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책 뒷면 표지에 쓰여 있다. 확실히 미스터리한 이야기들뿐이지만 그런 이야기가 얼마나 따듯하고 우리의 가슴을 움직일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야기를 보면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오싹한 부분도 있지만, 그 이상의 따스함 역시 내게 안겨 주었던 그의 작품들이었다. 단지 네 편의 단편 소설을 통해 느낀 것뿐이지만 가슴속 깊이 잠들어 있었던, 내가 무의식중에 동경하고 있던 듯한, 그런 굉장히 따듯한 무언가를 깨워주는 이야기들이었다. 이 책을 통해 ‘혼다 다카요시’라는 이름은 내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앞으로 그의 작품들을 많이 읽고 기다리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