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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가 이렇게 쉬울 리 없어!
조이 슬링어 지음, 김이선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블랙코미디. 이 단어는 어렴풋이 예전에 어딘가에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정확한 정의를 잘 몰랐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보았다. 백과사전에서는 ‘블랙코미디는 일반적인 유머나 코미디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웃기면서도 인간존재의 불안, 불확실성을 날카로이 느끼게 하는 것으로 현대인의 비참하고 부조리한 일면을 보여 준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조금이나마 커다란 맥락에 접근한 후,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였던 것 같다. 이러한 ‘블랙코미디’라는 익숙하지 않은 개념에 불필요하고 지나치게 얽매이다 보니 책을, 소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너무 어려운 것으로서 내 스스로 무게를 지운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역자 역시 <역자 후기>에서도 “노인들이 누구를 왜 선택하여 어떻게 죽이는가에 주목하며, 사회 풍자와 유머가 뒤섞인 블랙코미디로서의 비장함을 찾으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인 조이 슬링어는 캐나다의 저널리스트로서 사십 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언론업계(구체적으로는 신문업계)에 종사해온 베테랑이다. 토론토의 한 신문에서 유머러스한 칼럼을 통해 명성을 쌓아온 그가 내 놓은 첫 번째 소설이 바로 <복수가 이렇게 쉬울리 없어!>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지만, 몸 담았던 직종이 직종이니 만큼 그가 오랜 시간 동안 지켜보고 생각하고 글을 써왔던 분야가 그의 첫 번째 소설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실 그가 어떤 칼럼을 썼었는지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상 사회의 부조리하고 부도덕한 부분을 꼬집고 지적하는 글들을 썼던 경력이 있었기에 블랙코미디라는 장르가 그에게 가장 매력적이고 적합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복수가 이렇게 쉬울리 없어!>는 아내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려다 우연한 사고에 의해 전설적인 살인자가 되어버리는 여든 한 살의 ‘밸런타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물론 밸런타인 이외에 그와 의기투합한 수많은 괴짜노인들 이를테면 ‘마운트 러시모어’, ‘시스터 버니스’, ‘보롭스키’ 등이 등장하고 나름 다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사건, 사고, 소동이 소설의 중심 줄거리이다.
아내와 사별하게 된 여든 한 살의 노인 밸런타인. 그는 남아도는 시간, 그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시간을 보낼, 그 시간을 알차게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자신의 아내를 겁에 질려 죽게 만든 망나니 세 명에 대한 복수.(이 부분에서 사람은 나이가 들면 겁에 질려서도 죽을 수 있는 힘없고 나약한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슬프고 가슴 아픈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연히 의도하지 않은 방법으로 첫 번째 복수를 성공하고 ‘수도원’이라는 이름의 양로원에 들어가 그곳에서 만난 노인들과 뜻을 함께해 사회 정화 활동을 벌이게 된다.
평소 책을 읽는 속도는 느린 편이지만 소설 위주의 독서를 하기 때문에 소설은 나름, 다른 책에 비해, 빨리 읽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복수가 이렇게 쉬울리 없어!>를 읽는 데는 유독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학교를 오가는 지하철 속에서만 틈틈이 읽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내용이 쉽게 와 닿지 않고 뭔가 꽉 막힌 답답한 기분 속에서, 말 그대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글자를 보는 수준에서, 책을 읽었다(보았다고 해야 할까?). 이에 대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사람이 너무 자주 그리고 쉽게 죽는다. 물론 밸런타인과 그의 친구들이 펼치는 활동이 살인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겠지만, 그런 사람들의 가볍게 보이는 죽음들을 보면서 흥미도 많이 반감되고 정서가 메말라 가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로는, 우리가 외국문화를 접할 때 흔히 말하고는 하는 ‘정서의 차이 문제’ 때문인지 아니면 ‘블랙코미디’라는 익숙지 못한 장르 때문인지 어디서 웃어야 할지 포인트를 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미국드라마(이하 미드)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하는 걸까?’ 하고 생각을 해보았다. 평소 미드를 즐겨 보는데, 특히 미국시트콤을 볼 때도 이런 경험을 해 본적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방송 속 웃음소리가 삽입된 부분에서 나는 웃지를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러 번 반복적으로 보다보니 그들의 정서가 이해가 된 것일까 나도 웃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도 다시 여러 번 읽다보면 좀 더 제대로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