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 감각의 독서가 정혜윤의 황홀한 고전 읽기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고전'이란 말을 들을 때면 나는 무의식중에 그냥 자연스럽게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는 '제목이 귀에 익은데, 혹시 봤나? 아닌가?'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고전을 읽어야 하는데...'이다. 일종의 고전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듯하다. 고전이라고 하면 나는 딱딱하고 어렵고 나와는 아주 멀리 있는 그 무언가를 떠올리는 습관이 있다. 이러고 보니 고전에 대한 고정관념도 갖고 있는 듯하다. 무엇이 이렇게 나를 고전에 대해 근거 없는 두려움과 닿을 수 없는 거리감을 품게 했는지 아직은 그 답을 알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고전과 나의 관계?!'때문에 이 책을 고르게 되었던 것 같다. 평소에 생각하던 것처럼 '역시 고전을 봐야겠어...'라는 중압감이 이 책을 보자마자 손을 뻗게 만들었던 것이다. 생각만 하고 직접 고전을 찾아 읽을 생각은 하지 않던 나이기에, 여러 편의 고전들을 한 책에 모아놓은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을 찾았을 때는, 정말 '바로 이거야!'라는 환호를 마음속으로 부르짖었었다.

 

 

 

  책은 총 열다섯 편의, 이름은 다 한 번씩 어디선가 들어보았던, 고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은 언젠가 제목만 들어 봤던 고전, 읽다가 만 고전들이 대부분이었고, 극소수의 내가 읽었던 고전이 포함되어 있다. 단순히 고전의 줄거리와 자신의 생각만을 죽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고전과 연관성이 있는 다수의 기타 작품들을 통해 좀 더 깊이 있게 고전에 접근하고, 색다른 시각으로 고전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책이다.

 

 

 

  저자인 정혜윤 프로듀서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독서 에세이 작가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정혜윤이라는 이름을 접한 말 그대로 초보독자로서 그녀에게 크게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방대하고도 풍부한 독서량이 그것이다. 한 편의 고전에 관한 글을 쓰기위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저자가 여러 권의 관련 책들을 읽은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책 읽기의 즐거움을 뒤늦게 발견한 나로서는 내가 책을 읽는 이유, 독서의 방향 등등 깊고 어려운 이야기들은 뒤로 미뤄두고 있는 상황인데, 이번에 정혜윤 작가의 작품을 접하면서 일종의 동경 같은 것을 품게 된 것 같다.

 

  단지 고전에 국한된 것이 아닌, 한 명의 책을 좋아하고 책 읽기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책 읽는 자세라던가 어떤 닮고 싶다는 이상형을 발견한 것 같아서, 읽는 내내 어렵고 머리가 아팠던 적도 있었지만,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단 한 가지, 하지만 아주 치명적인,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내가 이 책에 수록 된 고전 작품들을 사전에 제대로 접하지 못한 상태였다는 점이다. 등장인물과 줄거리도 미처 모르는 상황에서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읽자니 너무나 힘에 부치고 더딘 책 읽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다른 독자 분들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정말 겨우겨우 넘어갈 수 있는 커다란 장애물과도 같은 부분이었다. 이것이 나에게 한 작품 한 작품을 읽어갈 때마다 책을 읽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글씨를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인지 하는 회의와 가슴이 탁 막히는 답답함을 선사해 주었다.

 

  시험기간이 닥치기 전에 다 읽으려고 했지만, 나의 느린 책 읽기 속도로 인해 화살보다도 빠른 시간에 따라잡혀, 결국 시험기간 틈틈이 읽고 말았다. 그래서 더욱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여기 담겨 있는 열다섯 편의 고전들을 모두 섭렵한 후에, 다시 이 책 속에 빠져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럼 지금과는 다른 그 무언가를 몸소 깨닫고 기쁨의 전율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믿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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