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선인장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사사키 아츠코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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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호텔 선인장. 이름만 호텔인, 사실은 3층짜리 아파트입니다.

주인공은 '모자', '오이', '숫자 2'입니다. 모자는 3층에 거주하고 있고, 도박꾼에 일정한 직장이 없는 한량 스타일이지만,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셋 중에 나이가 가장 많습니다.
2층에 살고 있는 오이는 예의 바르고 반듯하고 열정적이지만, 약간의 빈 구석도 보이는 친구입니다. 약간 4차원이라고 해야 할까요?
마지막으로 숫자 2는 1층에 삽니다. 내향적이고 고지식하면서 생각이 많은 스타일입니다.

각자 다른 층에 살고 성향도 많이 다르지만 그들은 서로 잘 맞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친구가 됩니다.

관계가 이렇게 되기 전, 소위 '층간 소음'이라고 불리는 일을 계기고 그들은 서로 처음 말을 섞게 됩니다. 그것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세 사람이 전에는 없던 대화를 하게 되었고, 뭔가 이상하게 하지만 또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가까워집니다. 마치 오래전부터 어울렸던 것처럼.

처음에는 숫자 2의 방에서, 나중에는 오이의 방에서 모인 그들. 매일이 멀다 하고 모여서 각자 좋아하는 술이나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보냅니다. 함께 경마장에 놀러 가기도 하고,  초여름 무렵 아파트에 새로 이사 온, 늘 흰색 원피스를 입는 그녀를 다 같이 사랑하기도 합니다. 각자 그녀와 데이트를 하기까지 하죠. 

이 외에도 그들 셋이 함께 하면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에피소드까지 담겨있습니다. 

모자, 오이, 숫자 2라는 등장인물의 이름이 비유나 별명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샤워를 마친 오이의 "몸의 초록 구석구석", "몸이 쭉 곧은 터라 의자에 앉을 수가 없다"라는 표현, 숫자 2가 경마장에서 '자신이 숫자 2라 2번 말에 걸 수밖에 없었다'라는 에피소드, 그리고 경마장에서 돌아올 버스비가 없어 숫자 2가 한 명 분의 버스비만 내기 위해 '모자를 쓰고 버스를 탔던' 에피소드까지 나오더군요. 분명 "사람'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들이 그 사물과 존재 그 자체라고도 나오니, 참 참신하고 재밌게 다가왔습니다.

어른 동화를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잔잔히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편안함을 주는 이야기를 읽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마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주는 기분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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