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못다 한 이야기들
마르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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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인 줄리아는 아담과의 결혼 준비로 정신이 없습니다. 그에게는 이미 한 달 전에 준비를 다 마쳤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사실을 전혀 그렇지 않았거든요.


결혼이 코앞이지만 아버지를 본 것은 6개월 전이 마지막입니다. 그것도 서로 마주 보고 만난 것도 아닙니다. 정말 우연히 길에서 차를 타는 그를 목격한 것뿐이죠. 얼굴을 마주한 지는 거의 1년 반이 다 되어가고, 대화를 한 건 이미 몇 년이나 지난 일입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아버지에게 연락을 아예 안 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아버지의 비서랑만 통화할 수 있었고, 결국 자신의 일상을 아버지가 아닌 그의 비서와 공유하는 것에도 싫증이 나버린 것입니다.


아버지와의 사이, 아니 사이라고 할 것도 없을까요.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사춘기가 막 오려던 시절 돌아가셨고, 그 이후 아버지는 더욱 바빠졌습니다. 단지 그녀의 느낌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출장은 더 잦아졌고 기간도 더 길어졌죠. 그렇게 그녀의 어린 시절 속 아버지는 빈자리가 되었고 성인이 돼서도 그 상처는 아물지 않았죠. 아마 평생 아물 수 없는 상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절친 스탠리와 함께 아직 준비 못 한 드레스를 고르던 줄리아에게 아버지 비서에게 전화가 옵니다. 비서가 전한 소식은 아버지의 부고였습니다. 출장 때문에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던 그가 일정을 변경해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했다는 등의 보다 나은 소식 대신에 말이죠. 그렇게 프랑스 파리에서 죽은 그를 줄리아가 있는 뉴욕으로 옮겨와 장례를 치르기로 한 날은 4일 후인 토요일, 바로 그녀의 결혼식 날입니다.


줄리아는 아담과 함께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합니다. 그렇게 결혼식은 미뤄지고, 비록 희미했지만 세상에 존재했던 아버지는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마음을 추스를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죠. 회사에서 프로그램 문제로 애니메이션 작업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져 주말에도 일을 하고 돌아온 그날 저녁, 어마어마한 크기의 상자가 그녀 집 거실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버지 안토니 왈슈와 완전히 똑 닮은 밀랍인형이 들어있었죠.


그것은 아버지가 투자했던 한 사이보그 제작 회사에서 개발에 성공한 것이었습니다. 줄리아는 최초의 고객이었고 샘플로 아버지(?)를 받은 것이었죠. 줄리아는 얼마든지 그것을 다시 꺼 버릴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6일이었습니다. 윤리적 문제로 딱 6일 치 분량의 교체 불가한 배터리로 제작한 것이죠.


마침 결혼으로 휴가를 내기로 했던 줄리아. 아버지 말대로 이제 6일이면 그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보내는 것이기에, 그녀는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신혼여행지로 예정했던 몬트리올로 아버지와 함께 떠납니다. 


줄리아는 그렇게 정말 기적처럼 찾아온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요? 어떤 일이 벌어지고, 둘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아버지, 어머니, 그 존재와 그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사이보그와 사후의 며칠을 보내며 살아생전에 미처 하지 못했던 일, 나누지 못했던 말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직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살아 있을 때, 아니 지금부터 바로,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의 소중한,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분들에게 그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아낌없이 표현해야겠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았으나, 본 서평은 오로지 제 주관적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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