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0 _ [시체를 보는 식물학자] - 마크 스펜서 지음, 김성훈 옮김

시체를 보는 식물학자 - 식물의 사계에 새겨진 살인의 마지막 순간
마크 스펜서 지음, 김성훈 옮김 / 더퀘스트 / 2021년 10월

평소 범죄, 추리, 스릴러를 좋아하다 보니 해당 장르의 외화 시리즈를 많이 보고 "그것이 알고 싶다"도 매주 챙겨봅니다. 생각해 보면 그럼에도 아직까지 관련 분야나 법의학자, 프로파일러 분들이 쓰신 책은 찾아서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그 책들도 꼭 탐독해 봐야겠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덕분에 법의학, 법의학자라는 용어는 익숙해져 있었는데, 이번에 "법의식물학"이라는 또 다른 신세계를 만났습니다.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면 아마도 친숙한 사람보다는 낯선 이가 더 많을 것 같은, 이 '법의식물학'을 알아가는데 필요한 통찰을 독자에게 전해주는 것이 이 <시체를 보는 식물학자>의 목적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습니다.

법의식물학은 '법의환경학' 하위에 속하는 분야입니다. 법의환경학은 토양, 동ㆍ식물, 균, 곤충 등에서 나오는, 범죄 사건 수사에 있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환경이라 전제합니다. 이를 토대로 미처 발견되지 못한 피해자의 시체를 찾아주거나, 식물 등 발견된 시체의 주변 환경을 이용해 그 시체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피해자에게 벌어진 일과 범인의 흔적 등을 알아냅니다.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살인 같은 강력 범죄가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아내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법의식물학자의 주된 역할이라고 합니다. 범죄 발생 시기뿐만 아니라 범행 수법이나 특징에 대해서까지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고도 흥미로웠습니다.

시체가 생기면 식물을 포함한 그 주변의 모든 생명체가 시체에 반응을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 생명체들이 시체 주변에서 자라나면서 그 시체를 전체적으로 둘러싸다 보니 사건 발생 직후부터 발견되기까지의 시간 동안 시체와 그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것이라고 하네요. 아마도 이것이 "말 없는 목격자"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일 것입니다.

저자는 '범죄 수사물의 가장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CSI 과학수사대"의 내용은 실제와 제법 차이가 있다, 특히 '법의환경학 여러 분야를 통달한 지식을 갖춘 반장', '못 하는 것이 없는 온갖 최첨단 기기들', '늘 새것 같이 하얗고 주름 하나 없는 가운' 등은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라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마냥 신기하고 재밌어서 보았고, 나중에는 그것이 다큐멘터리도 아닌 드라마이기에 허구적인 내용이 분명 있을 수밖에 없다 생각했지만, 막상 해당 분야 종사자이자 전문가에게 직접 듣고 나니 생각보다 더 허탈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책에는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나무의 '나이테', 범인들이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는 묘지의 '아이비 줄기', 환경 조건만 잘 맞는다면 상상 이상의 긴 시간을 존재할 수 있는 그 특성으로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꽃가루' 등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하는 식물들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저자의 생생한 현장 표현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이야기들 덕분인지, 아니면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범죄 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종종 받았습니다.

"죽은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의 평화를 안겨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과 한 팀으로 일하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라는 저자의 말이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어렵고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러울 테지만 분명 그 이상으로 고귀하고 소중한, 이 일을 하시는 분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그분들께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았으나, 본 서평은 오로지 제 주관적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