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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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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변명은 아니지만, 그때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올바른지 판단할 여유가 없었다. 그때 나는 나무토막을 붙들고 물이 흐르는 대로 떠내려갈 뿐이었다. 주위는 칠흑같이 어둡고 하늘에눈 별도 달도 없었다. 죽어라 나무토막을 붙들고 있는 한 익사는 면할 수 있지만, 내가 어디쯤 있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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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나는 이렇게 답답한 관 속에 동생의 가냘픈 몸을 두고 싶지 않았다. 그 몸은 더 너른 곳에 눕혀야 온당했다. 이를테면 초원 한복판에. 그리고 우리는 무성하게 자란 초록 풀을 헤치고 조용히 그애를 만나러 가야 온당하다. 바람에 풀이 천천히 흔들리고, 주위에서는 새들이 지저귀고 벌레들이 울어야 한다. 들꽃이 허공에 꽃가루를 날리며 향기를 내뿜어야 한다. 해가 지면 수많은 은빛 벌이 머리 위 하늘을 수놓아야 한다. 아침이면 새로운 태양이 풀잎에 맺힌 이슬을 영롱하게 빛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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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시키 와타루
175.
전 누구나 인생에서 그렇게 대담한 전환이 필요한 시기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포인트가 찾아오면 재빨리 그 꼬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단단히 틀어쥐고, 절대 놓쳐서는 안돼요. 세상에는 그 포인트를 붙들 수 있는 사람과 붙들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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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다 마사히코
377.
좋은 면을 보도록 해봐.
괜한 충고인지 몰라도, 어짜피 같은 길을 갈 거라면 양지바른 쪽으로 걷는 편이 좋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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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아.
404.
오전은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니야. 암흑은 나의 친구고, 진공이 나의 숨결이지. 그러니 이만 실례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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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치
417.
응, 오빠는 그 구멍에 들어가기에는 너무 커. 그리고 있지, 제일 굉장한 건, 거기가 더이상 깜깜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깜깜하다는 거야. 빛이 없어지면 어둠을 손으로 잡을 수 있을 만큼 깜깜해. 그리고 그 어둠 속에 혼자 있으면, 내 몸이 점점 풀어져서 사라지는 기분이야. 하지만 깜깜하니까 내 눈에는 안 보여. 몸이 아직 남아있는지 벌써 없어졌는지도 알 수 없어. 그래도 말이야, 만약 내 몸이 전부 없어졌다고 해도 나는 분명히 거기 남아 있는 거야. 체셔 고양이가 사라져도 웃음이 남는 것처럼. 엄청 이상한 얘기지? 하지만 거기 있으면 전혀 이상하지 않아. 언제까지라도 거기 있고 싶었는데 오빠가 걱정할 것같아서 나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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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 참선
#북스타그램 #기사단장죽이기 #무라카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