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 현은 일제강점기인 1920-1930년대에 외국 문학이 활발하게 번역될 때 여성 문인들도 번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에 주목한다. 김명순, 노천명, 모윤숙 등은 창작 활동을 통해 여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번역에도 참여했다.

테레사 현은 이들 여성 번역가들의 번역 작품이 새로운 여성상 을 제시하는 한편 현대적 감각의 구어체를 발달시키는 데 기여 했다고 평가한다. 이때 여성 번역가들이 하던 번역 작업에 어떤 감정이 끼어들었을지 상상해볼 수 있다. 이들은 식민 지배를 받는 민족인 데다 여성이라는 이중의 억압 상황에서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동경을 품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외국 문물과 문화에 갈망을 품고 번역에 참여하고, 또 번역 문학 을 갈급하게 소비했으리라. 아직 근대를 온전히 이루지도, 독립된 나라를 갖추지도, 근대적 문학의 틀이 확립되지도 못했던 때에 나온 번역 작품들을 보고 오늘날 우리는 완성도가 떨어진 다고,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옮기지 못했다고, 어쩌면 열등해서 초조한 자신의 모습을 너무 많이 노출했다고 비웃을 수 도 있다. 그렇지만 외국의 책에 끌린 까닭은 거기 담긴 세상이 알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어서, 상상할 뿐 경험할 수 없어서, 특히 내가 발붙이고 있는 현실이 초라하고 보잘것 없을 때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그리워하게 된다. 나는 남에게 빼앗긴 내 땅에서 외국인이 되어 낯선 땅에 향수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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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옥수수빵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홍한변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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