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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
송두율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4월
평점 :
대담 후기에 저자는 자신의 철학을 '다름의 공존'과 '과정으로서의 변화'로 압축하였고, 이것을 토대로 '현대성'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키고 싶다고 하였다.
처음으로는 '계몽과 해방'을 통해서, 그리고는 '소련과 중국' 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사유에 관심을 끊지 못하고 있었던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이 책은 정말로 깊은 고뇌에 빠지게 만들었다. 특히
대담자가 저자에게 보낸 편지 속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밀란 쿤데라는, 권력의 핵심은 망각하게 하는 것이라며 기억하기 위한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우리는 그 평범한 진리조차 실천해 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요컨대, 언론, 법, 이데올로기, 지식인의 세계
속에서 음험하게 작용하는 냉전 반공주의의 권력 효과를 문제 삼지 않는 한 한국 사회의 미래는 없다는
절실한 생각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
책장을 덮고 하루를 보내면서 왜 나의 머리 속에는 계속해서 루쉰이 묘사한 '아큐'의 형상이 떠나지 않는
것일까? 루쉰과 송두율을 비교해 볼 힘도 없지만, 루신이 '미친놈의 일기<광인일기>'에서 묘사한 '중국의 근본은 전적으로 도교에 있다'는 말에 빗대어 본다면 현대 한국의 근본은 전전으로 반공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루쉰의 이러한 표현을 혹자는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있지만(나도 한때는 루쉰의 맥락을 모르고 그렇게 생각한 때도 있었다), 루쉰이 아큐로 묘사한 중국 국민성의 심리적 밑바닥에는 현실긍정과 망각의 정치 곧 노예 근성이라는 문화심리로서의 '도교'가 철두철미하게 스며들어 있다고 보았듯이, 저자의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와 분석, 그리고 희망의 비판에는 정말로 '절망을 넘어선 희망'이라고 느꼈다.
루쉰을 부정하거나 긍정하든 모든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루쉰은 (중국의) 민족혼이다'라는 영정을 관 위에
덮어서 그를 보냈지만, 나는 여전히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 즉 '' 一個都不寬恕' 으로 정신의 해독제를 삼고 싶다. 아큐가 아니라 캄캄한 한밤에 달빛을 받고 있는 대추나무같은 사람이 우리 곁에 좀더 많았으면 좋겠다. 용서는 다음 세상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