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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공부, 오래된 인문학의 길
한재훈 지음 / 갈라파고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과연 서당공부와 인문학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 듯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인문학을 서양의 철학이나 문학 등의 것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한국인이며, 한국의 인문학이 분명히 있을 것인데 나도 모르게 인문학은 서양의 것만을 추구했던
것이다.
어쩜 나와 같은 편협된 생각을 하는 많은 사람들을 저자가 접하고, 또한 그런 사실들을 알아가면서
안타까움을 느껴 저자는 책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왜냐하면 그가 직접 서당공부를 체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래서 이 책 머리말에 이런 말을 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교육시스템에 비추어 보면 서당은 아무런 쓸모도 없어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방법이란 답답하기 짝이 없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굳이 ‘서당’을 이야기하는 까닭은 일종의
‘애례존양’의 마음에서입니다. 이미 없어져버린 ‘서당’을 통해 그 안에 스며있는 소중한 가치를 음미하고, 그러한 가치를 통해 오늘 우리가 직면한
문제 상황에 새로운 해결의 단초를 찾아보고자 함입니다. 고대의 예가 곧 오늘의 문제 상황을 곧바로 해결해주지는 못하겠지만, 그 예에 담긴 진정한
의미 속에서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할 수만 있다면 결코 희생되는 양 한 마리가 아깝지 않으리라
믿습니다.」(p.9)
저자의 이야기에 백번 천번 공감을 보내는 부분이다. 옛것을 통해 현재를 되돌아보고, 또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한데, 지금의 상황은 그러지 못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안타까운 일들을 저자는 여러 가지 지적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시간표’이다.
「제가 이 ‘시간표’에 주목하는 것은, 그것으로 대표되는 학원(저는 초․중․고 정규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지만, 학교 역시 학원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에서의 공부과정이, 물론 푸코의 주장과 같은 감시와 처벌이 자행되지 않다
해도, 그 자체로 내포하는 문제점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선 학원(학교)의 시간표는 너무나 몰인정하고 야멸칩니다. 시간표는 해당 학급에서
진행되어야 할 수업을 명령합니다. 한 수업이 끝나면 그다음 수업을 또 명령합니다.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이 시간표의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왜 그 수업을 그 시간에 받아야 하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 수업을 받는 학생들의 상황이나 처지 역시 고려되지 않습니다. 그 학급에서
공부하는 수십 명의 학생들은 다 다릅니다. 이해력도 다르고, 관심영역도 다르고, 심지어 생체리듬도 다릅니다. 동일인이라 해도 지난 주 월요일과
이번 주 월요일이 같을 리 없고, 화창한 날과 비 오는 날이 같을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모든 몸과 삶의 결들은 시간표의 명령 앞에서
같아져야만 합니다. 시간표는 이미 권력입니다. 이제 학생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습니다. 그 시간표에 순응하든가, 아니면 도태되든가. 이런
점에서 시간표는 대단히 몰인정하고 야멸칩니다.」(p.120~p.121)
언 듯 보면 군인들처럼 훈련시키는 것과 같아 보인다. 그러나 실제 군인들에게 훈련과 교육 등을
시키면서 복종을 강요할 때 그것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려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엄청난 문제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그럼 어떤 논리로 학생들에게 이야기할까? 아마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좋은
대학을 가야 좋은 직장을 얻고, 또 좋은 직장을 얻어야 돈도 벌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할 수 있다”와 같이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세뇌교육을 하는 듯하다. 물론 학교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그렇게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니 그들의 독립성과 주체성은 엄청나게
훼손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 시발점이 바로 저자가 이야기하는 시간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무튼 이런 안 좋은 부분들에 대해서는 서당의 좋은 점들을 반추삼아 변화가 일어나면 좋겠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중간 중간 마음에 많이 와 닿았다. 물론 이것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수업을 진행하는 것, 계단 꼴과 같은 공동생활 등
서당에서의 좋은 것들을 지금의 현실에 맞게 접목할 수 있도록 연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꼭 필요한 일이다.
제발 교육을 백년대계라 부르짖으면서 정작 정치적인 논리 앞에서 무릎 굻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