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드 파리 청소년 모던 클래식 1
빅토르 위고 지음, 박아르마.이찬규 엮음 / 구름서재(다빈치기프트)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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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 드 파리에 대해 아주 단편적인 몇 가지 단어들만 알고 있었다.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 노트르담 꼽추, 신부 등과 같은 단어들 외에는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어 무슨 내용인지 무척이나 궁금해 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책을 읽기 전, 빅토르 위고의 작품이라 내용이 아주 어려울 것이라는 막연한 걱정이 있었지만, 막상 책을 읽다보니 나의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뛰어난 작가는 작품이 쉬우면서도 깊이가 있다는 정설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게 되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깊은 여운이 남았다. 심지어 꿈에서도 작품과 관련된 꿈을 꿀 정도였으니, 그 재미와 여운이 꽤나 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 이 작품에 대해 전체적으로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전체적인 키워드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각각의 사랑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그 중에서도 중심 되는 인물은 대략 다섯 명 정도인 것 같다. 그들은 바로 그랭구아르, 에스메랄다, 콰지모도, 프롤로, 페뷔스이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사랑에 대해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에 대해 묘하게 섞어 놓은 듯하여, 책을 다 읽고 나서는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한동안 있다가 다시 책을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과연 빅토르 위고는 독자들에게 어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되새겨 보게 되었다.

 

다섯 명의 인물들 각자가 표현하고, 추구하는 사랑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고, 살펴보면서 유독 눈에 띄면서도, 마음이 가는 인물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클로드 프롤로 부주교”였다. 그의 사랑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빅토르 위고는 그 신부를 통해 사랑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생각되어 지는 달콤함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집착하면서 음산하고, 폭력적인 것을 넘어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아주 극단적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독자들에게 경고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물론 콰지모도의 사랑은 신부와 아주 대조적으로 순수하고, 희생적이며, 영혼의 사랑을 갈구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아주 많은 사람들이 감동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지게 되면, 사랑을 통해 해결을 해야 되는데, 프롤로 신부는 그것을 하지 못하였기에 파괴적인 사랑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그럼 과연 사랑을 통해 해결을 해야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너무 쉽다. 그냥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하고, 스킨쉽 하면서 몸과 마음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에스메랄다가 그랭구아르에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 했던 바로 그것이다.

 

「“아, 사랑이란! 그것은 둘이면서도 서로 섞여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지요. 하나의 천국을 만드는 것이지요.”」(p.54)

 

여기서 에스메랄다의 이야기 중 생략된 부분은, 둘이 서로 그런 사랑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지고 나서 서로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혹 한쪽이 거부하는데, 상대방이 강요하거나 강제적으로 그 사랑을 이끌어내려고 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망에 가까운 것이다.

 

아무튼 프롤로 신부의 잘못되고, 비극적이며, 파괴적인 사랑의 표현들이 어떠한 이유로 인해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원인에 대해 시간을 두고서 객관적으로 분석해 봐야겠다고 다짐해 보며, 아쉽지만 노트르담 드 파리에 대한 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칠까 한다.

 

마지막으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중, 프롤로가 <나를 파멸시킬 너>를 부르면서, 자신의 욕정의 원인이 자신이 아닌 악마 같은 에스메랄다라고 믿고 싶은 프롤로는 삶이 끝날 때까지 저주하겠다고 다짐하며 욕정을 키워가게 되는 노래를 함께 들어보겠다.(p.239)

 

“나의 핏줄 속에 몰아치는,

나를 미치게 하는 너.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너.

나를 불행하게 하는 너, 태양의 열정이여.

너를 파멸시키리, 저주하리.

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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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징비록
박경남 지음 / 북향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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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왜 <징비록>을 읽지 않았을까?”

 

‘작가의 말’의 소제목이 나의 마음을 흔드는 것 같다. 왠지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이다. 작년 임진왜란에 관련된 책 중 류성룡에 관련된 책을 구매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여러 일들 때문에 읽기를 차일피일 미루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작년에 샀던 책을 살펴보니 더 자세한 내용 이였음을 확인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러면서 현재의 정치에 대해 비판하고 비난했던 나의 모습에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서인지 앞으로는 어떤 평가를 하려거든 과거를 자세히 돌아보고, 현재를 꼼꼼히 살핀 후, 미래에 대한 대안이 있을 때 이야기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물론 처음부터 쉬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훈련한다는 마음으로 한다면 언젠가는 부끄럽지 않을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또 그렇게 되기를 갈망한다.

 

한국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한 게 된 것이 거의 2~3년이 되어간다. 공부를 하면서 몰랐던 것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도 있지만, 이상하게 공부를 하면 할수록 가슴이 자꾸 아파온다. 아무래도 안타까운 역사를 너무나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의 역사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한(恨) 많은 신파극에 가까울 정도이다. 어찌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들이 저럴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화가 많이 났다. 그러면서 지금의 상황을 비추어 보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라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래서 역사를 제대로 배워야 하는 구나’ 라고 뼈저리게 느낀다. ‘모르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옛 속담처럼 우리 역사의 굴레가 그와 같아 정신이 어지러워지는 것 같다. 모르면 배워야 되지만 모르는 것 자체에 대해 누군가 배워야 함을 역설하지 못하니 나 또한 어리석은 자로 나아가게 되어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와 같은 자가 너무 많으니 이 나라가 나라일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이제라도 열심히 공부하여 내 주변 사람들에게 역사에 대해 하나씩 이야기해 주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라가 나라일 때가 별로 없었던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류성룡의 징비록을 전체적으로 훑어볼 수 있어 정말 좋았고, 감사했다. 이 책을 토대로 임진왜란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싶다는 의욕이 많이 올라오게 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이순신에 관련된 책, 임진왜란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에 대해 몇 차례 공부를 하였지만, 류성룡의 징비록을 보니 또 다른 관점을 얻었을 수 있어서 많은 공부가 되었던 것 같다.

 

또 역사를 공부하면서 한숨을 많이 쉬게 되는데, 이러한 것이 안 좋은 의미라기보다는 징비록의 뜻처럼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 뒤에 환난이 없도록 조심하자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조금씩 나를 먼저 돌아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야겠다고 생각에 생각을 곱씹어 본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부분은, 이순신의 종자로 일했던 이매가 이순신의 죽음에 대해 추측해 보는 장면 이였다. 나도 이순신에 대한 책을 보면서 가장 의혹이 많이 들었던 것인데, 이매의 이야기를 통해 어쩌면 정말 이순신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을 선택했을 것 같다는 것에 크게 공감이 되었다. 이순신은 죽음을 선택하면서 우리에게 커다란 생각꺼리를 준 것 같다. 만약 이순신이 죽지 않고, 임진왜란의 큰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조정에서 그를 죽였다면 과연 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질 이가 누가 있을까 생각하니, 오히려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순신처럼 죽을 때까지 나라에 대한 불평과 분노를 주위 사람들에게 쏟아내기 보다, 오직 나라를 위해 한 몸 던진 그 정신을 배워야겠다고 류성룡의 징비록을 보며 다짐해 본다. 어쩌면 그래서 류성룡의 징비록을 꼭 읽어야 되는 이유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매가 죽을 각오로 류성룡에게 이야기 한 대목을 함께 살펴보면서 나의 마음 또한 다져본다.

 

「“소인 죽을 각오로 말씀 올리겠습니다. 나리를 죽게 한 이는 임금님이라고 했습니다. 소인 또한 그리 여기옵니다. 나리께서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고, 백성들을 위해 살았는데, 임금님과 조정은 그런 나리에게 죄를 주었으니, 전쟁이 끝나고도 나리께 어떤 죄를 줄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리는 차라리 전사하는 편이 낫다고 여겨 조총을 맞은 거라 했습니다. 임금님이나 이 나라는 나리를 지켜주지 않을 거라 했습니다.”」(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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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반양장)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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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무슨 내용을 담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한 것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자꾸만 펼쳐보며 읽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책의 구조가 아들러의 사상을 대화 형식으로 엮어내었던 것이 다른 책과는 많이 차별되어 좀 더 기억에 남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은이가 플라톤의 「대화편」 형식을 빌려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가 처음엔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와 읽고 있었지만, 어느새 스스로 ‘충격’을 받게 되는 부분들이 있게 되었다. 우선 그 부분에 대해 살펴보겠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무기력한 존재로 세상에 태어나 그러한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보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아들러의 표현에 의하면 그것은 ‘우월성 추구’이다. 간단히 말해 ‘향상되기를 바라는 것’, ‘이상적인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와 대조를 이루는 것이 바로 ‘열등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더 나아지길 바라며 우월성을 추구하지만 자신이 내건 이상과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자신이 뭔가 모자라다고 느끼게 된다. 이러한 우월성 추구와 열등감은 병이 아니라 건강하고 정상적인 노력과 성장을 하기 위한 자극이다. 즉 열등감도 제대로만 발현하면 노력과 성장의 촉진제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열등감을 도약의 발판 삼아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한 발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더 행복해지려고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한 발 내딛을 용기도 내지 못하고 ‘상황은 현실적인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어차피 나 같은 건”, “어차피 열심히 해봤자”라며 포기하는 사람들이다. 철학자는 이걸 ‘열등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물론 현재 우리 사회에서 ‘콤플렉스’라는 말이 열등감과 같은 말처럼 쓰이고 있지만, 그것은 완전히 잘못 쓰고 있는 것이므로 정확하게 구분해서 써야할 필요가 있다. ‘열등 콤플렉스’란 자신의 열등감을 변명거리로 삼기 시작한 상태를 가리킨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나는 학력이 낮아서 성공할 수 없다”라고 하거나 “나는 못생겨서 결혼을 할 수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들이다. 즉 일상생활에서 “A라서 B를 할 수 없다”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이미 열등감의 범주를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열등 콤플렉스가 지닌 또 다른 측면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열등 콤플렉스를 말이나 태도로 밝히는 사람, “A라서 B를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A만 아니면 나는 유능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열등 콤플렉스에서 또 다른 특수한 심리 상태로 발전된 것으로 ‘우월 콤플렉스’라고 했다.

 

심한 열등감에 괴로워하면서도 노력과 성장 같은 건전한 수단을 이용해서 보완할 용기가 없고, 그렇다고 열등 콤플렉스로도 더는 견뎌낼 수 없을 때 보상하려는 데서 나온 것이다. 마치 자신이 우월한 것처럼 행동하며 ‘거짓 우월성’에 빠지는 것이다. 가까운 예로 권위 있는 사람의 힘을 빌려서 자신을 포장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자랑을 심하게 하는 것도 우월 콤플렉스의 하나라고 했다. 그 예로 열등감 자체를 첨예화시켜 특이한 우월감에 빠지는 ‘불행 자랑’이라는 것을 꼽았다. 이것은 자신의 열등감을 드러내놓고 마치 무기처럼 휘두르며 상대방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불행하고, 얼마나 괴로운지 알림으로써 주변 사람들을 걱정시키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속박하고 지배하려 든다.

 

이렇듯 스스로 충격 받았던 부분을 몇 번이고 다시 읽고 또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어쩌면 바로 내가 ‘불행 자랑’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행복해지고 싶었지만, 실상은 내 자신이 특별해지기 위한 방법으로 내 ‘불행’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행복했던 경험보다는 불행했던 경험을 더 생각해내고 필요로 했던 건 아니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엔 이 책의 구조인 ‘대화’에 몰입할 수가 없어서, 제 3자의 입장에서 마치 TV 대담 프로그램 패널로 ‘구경’하듯 읽었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아들러의 심리학’이 내 마음 문을 ‘철컥’ 열고 들어와 있었음을 깨달게 되었다.

 

그렇다고 책 한권으로 아들러의 심리학을 다 알았다고 할 수도 없고, 엄청난 용기가 생겼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이 책을 읽고 한 발 내딛을 수 있는 작은 용기를 품었다는 것, 그리고 ‘과거 속의 나’보다는 변화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내가 있다는 사실’을 직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게 되었다.

 

정말 ‘미움 받을 용기’가 생길 때까지 나는 몇 번이고, 이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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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아프리카 : 동아프리카편
문종성 글.사진 / 어문학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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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관련 서적들을 즐겨보는 편이 아니라 이 책에 대해서 그리 크게 기대를 가지고 본 것은 아니다. 그냥 ‘아프리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예전부터 호기심이 많았기에 아프리카에 대해 구경삼아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을 보게 되었다. 이런 게 여행이며, 이런 게 아프리카란 말인가? 정말 놀라움에 가슴이 멍멍해질 때가 많았다.

 

단순히 아프리카에 대한 지역적 설명과 문화, 볼거리 등과 같은 내용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이 책에서는 그런 일반적인 이야기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대신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대부분 이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많아 눈물을 훔친 적이 의외로 많았고, 여행 관련 책으로도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움과 함께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아마 앞으로는 여행 관련 책들을 즐겨 읽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은 남아프리카를 필두로 동쪽에 위치한 아프리카 여러 지역을 자전거로 여행하면서 선한 사마리아 프로젝트(모기장 설치)를 실천하는 과정을 저술한 책이다. 먼저 지은이면서 실제 여행자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히 엄두도 못 내고, 흉내 내기조차 힘든 여행을 하였다는 것에 무한한 찬사를 보낸다. 어쩌면 여행자는 그런 어려운 상황을 통해 도(道)를 깨달아 가는 것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험난한 여행 이였지만, 그 어디서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을 한 것에 행복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여행을 가장한 모험가요, 탐험가요, 나그네요, 구도자와 같이 흔하지 않은 경험을 한 여행자가 대단하다 라고 말할 수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혹 나에게 용기가 생기게 된다면 여행자와 비슷한 경험을 따라할 수는 없지만, 여행자를 직접 찾아가 아프리카 여행에 대해 생생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보고 싶다.

 

이상하게 이 책을 통해 아프리카인들에 대해 더 자세한 알아가 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게 되었다. 어쩌면 그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 본연의 마음에 대해 더 심층적으로 연구하여 다양한 희망을 알아가 보고 싶은 열망이랄까? 아무튼 잔잔한 감동과 함께 뜨거운 가슴을 가지게끔 만들어 준 이 책을 통해 작은 희망들이 싹 트여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여행자가 느꼈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을 함께 공유하며 글을 맺을까 한다.

 

「그러니까 그들이 그토록 애타게 버스를 불러 세운 것이, 맨발로 달리면서까지 버스를 쫓아간 것이 물건 값을 받기 위함이 아닌 거스름돈을 주기 위해서였다. 마지막까지 계산을 마치고 삼삼오오 정류소로 돌아오던 아낙네들의 표정에는 환한 꽃이 피어 있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호호호 웃는 걸까? “글쎄 버스 놓쳤으며 하마터면 거스름돈 못 줄 뻔했다니깐! 승객이 얼마나 속상했겠어?”라는 말들을 하는 걸까? 구태여 버스를 세우기 위해 달려간 저 맨발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가? 서너 살 먹은 여자아이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낯설었나 보다. 아직 숨을 몰아쉬고 있는 엄마에게로 가 치마를 잡아당기며 팔을 벌렸다. 안아 달라는 투다. 아아, 나는 이 장면을 보고선 가슴에 가벼운 통증이 일어났다. 순박함의 극치를 보고 있었다. 잊어버리고 살아온 인간의 어떤 표현할 수 없는 존엄성을 마주한 기분이다. 이것이, 여기가 바로 아프리카란 말인가, 지난 며칠 동안 만난 친절과 배려의 반응들이 진정한 원색의 아프리카란 말인가, 하찮은 이익에도 탐욕에 눈이 멀어 양심을 쉽게 저버리는 나의 부끄러움은 도대체 어떡해야 한단 말인가, 따위를 연신 되뇌면서 채 가시지 않는 감동의 흥분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단언컨대, 아프리카에서 바라본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p.227~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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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사용설명서 - 정신과 의사가 붓다에게 배운
마크 엡스타인 지음, 이성동 옮김 / 불광출판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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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트라우마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왜냐면 나의 직업이 ‘심리상담사’이다 보니 자주 상대방의 트라우마를 접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주 접하면서도 어떻게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을 잘 도와줄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은 별로 없었다.

 

트라우마라는 것이 단순히 한두 가지의 원인과 문제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여러 가지 원인과 복잡한 문제로 얽혀있기 때문에 풀어내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풀어내지도 못한 채 상담이 끝나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렇듯 트라우마는 다른 어떤 문제들보다 아주 어려운 문제이며, 전문가들조차도 크나 큰 숙제와도 같은 느낌으로 남아 있을 때가 많은 것 같다.

 

위와 같은 생각들을 평소에 하고 있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서는 정말 많이 반가웠다. <트라우마 사용설명서> 이 책을 제대로 읽기만 하면 왠지 상담 장면에서 트라우마에 대해 자신감이 많이 올라갈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큰 제목 위에 있는 작은 제목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살짝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 정신과 의사가 붓다에게 배운... >

 

붓다라고 하면 불교인데, 종교를 떠나서(참고로 난 기독교인이다) 불교라는 학문이 서양철학만큼이나 어려운 동양철학과 가까운 학문과 같은 것인데, 과연 내가 잘 이해하고, 수용하여 내담자에게 잘 활용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내 예상과 달리 아주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누군가에게 활용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깨달기도 조금 버거웠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단순히 나 혼자 보고 좋았다 라고 생각하고서 보았더라면 괜찮았겠지만, 이 책을 보는 순간 나의 욕심이 앞서 내담자에게 활용하려고 하다 보니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나 스스로에게 많이 실망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반쯤 읽다가 마음을 고쳐먹기로 하였다. 누군가에게 활용하기보다 나 자신을 수련하는 차원에서 가볍게 읽어 보기로 하였다. 여기서 수련하는 차원은 통독보다 정독에 가깝게 책을 읽는 것을 말한다. 물론 스터디 하듯이 하면 더 좋았겠지만 그러기에는 이 책이 좀 버거웠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책을 다시 읽으니 그전보다 마음의 부담이 많이 줄어들게 되었다. 어쩌면 그런 나의 심적 부담감이 내 안의 있는 트라우마를 자극하여 나를 힘들게 하였던 것이 아닐까 분석해보니, 마음을 고쳐먹었던 것이 오히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해결책에 약간은 근접하였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어쨌든 이래저래 책을 읽으며, 내 스스로에게 나름대로 적용해 볼 수 있게 되어 좋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좋았던 부분이 있어 함께 나누어본다.

 

「“빠져나가려면 통과하는 수밖에.” 붓다는 자신의 트라우마가 어디서 왔는지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붓다는 공감이나 적절한 반응 같은 것을 이끌어내서 자신에게 필요한 내면 환경을 스스로 창조했다. 붓다의 성공은 우리 모두에게 훌륭한 모범이다. 우리가 직면하지만 설명할 수는 없는 불편한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불편한 감정을 이용하여 우리 마음이 바로 넓은 바다가 되어야 한다.」(p.37)

 

「트라우마에 파괴당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트라우마를 통해 자신의 관계 맺기 능력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일깨울 수 있다. 트라우마는 우리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우리를 더 인간적인 사람으로, 더 배려하는 사람으로, 더 현명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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