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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반양장)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ㅣ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무슨 내용을 담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한 것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자꾸만 펼쳐보며 읽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책의 구조가 아들러의 사상을 대화 형식으로 엮어내었던 것이 다른 책과는 많이 차별되어 좀 더 기억에 남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은이가 플라톤의 「대화편」 형식을 빌려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가 처음엔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와 읽고 있었지만, 어느새 스스로 ‘충격’을 받게 되는 부분들이 있게 되었다. 우선 그 부분에 대해 살펴보겠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무기력한 존재로 세상에 태어나 그러한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보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아들러의 표현에 의하면 그것은 ‘우월성 추구’이다. 간단히 말해 ‘향상되기를 바라는 것’, ‘이상적인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와 대조를 이루는 것이 바로 ‘열등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더 나아지길 바라며 우월성을 추구하지만 자신이 내건 이상과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자신이 뭔가 모자라다고 느끼게 된다. 이러한 우월성 추구와 열등감은 병이 아니라 건강하고 정상적인 노력과 성장을 하기 위한 자극이다. 즉 열등감도 제대로만 발현하면 노력과 성장의 촉진제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열등감을 도약의 발판 삼아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한 발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더 행복해지려고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한 발 내딛을 용기도 내지 못하고 ‘상황은 현실적인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어차피 나 같은 건”, “어차피 열심히 해봤자”라며 포기하는 사람들이다. 철학자는 이걸 ‘열등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물론 현재 우리 사회에서 ‘콤플렉스’라는 말이 열등감과 같은 말처럼 쓰이고 있지만, 그것은 완전히 잘못 쓰고 있는 것이므로 정확하게 구분해서 써야할 필요가 있다. ‘열등 콤플렉스’란 자신의 열등감을 변명거리로 삼기 시작한 상태를 가리킨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나는 학력이 낮아서 성공할 수 없다”라고 하거나 “나는 못생겨서 결혼을 할 수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들이다. 즉 일상생활에서 “A라서 B를 할 수 없다”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이미 열등감의 범주를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열등 콤플렉스가 지닌 또 다른 측면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열등 콤플렉스를 말이나 태도로 밝히는 사람, “A라서 B를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A만 아니면 나는 유능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열등 콤플렉스에서 또 다른 특수한 심리 상태로 발전된 것으로 ‘우월 콤플렉스’라고 했다.
심한 열등감에 괴로워하면서도 노력과 성장 같은 건전한 수단을 이용해서 보완할 용기가 없고, 그렇다고 열등 콤플렉스로도 더는 견뎌낼 수 없을 때 보상하려는 데서 나온 것이다. 마치 자신이 우월한 것처럼 행동하며 ‘거짓 우월성’에 빠지는 것이다. 가까운 예로 권위 있는 사람의 힘을 빌려서 자신을 포장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자랑을 심하게 하는 것도 우월 콤플렉스의 하나라고 했다. 그 예로 열등감 자체를 첨예화시켜 특이한 우월감에 빠지는 ‘불행 자랑’이라는 것을 꼽았다. 이것은 자신의 열등감을 드러내놓고 마치 무기처럼 휘두르며 상대방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불행하고, 얼마나 괴로운지 알림으로써 주변 사람들을 걱정시키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속박하고 지배하려 든다.
이렇듯 스스로 충격 받았던 부분을 몇 번이고 다시 읽고 또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어쩌면 바로 내가 ‘불행 자랑’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행복해지고 싶었지만, 실상은 내 자신이 특별해지기 위한 방법으로 내 ‘불행’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행복했던 경험보다는 불행했던 경험을 더 생각해내고 필요로 했던 건 아니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엔 이 책의 구조인 ‘대화’에 몰입할 수가 없어서, 제 3자의 입장에서 마치 TV 대담 프로그램 패널로 ‘구경’하듯 읽었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아들러의 심리학’이 내 마음 문을 ‘철컥’ 열고 들어와 있었음을 깨달게 되었다.
그렇다고 책 한권으로 아들러의 심리학을 다 알았다고 할 수도 없고, 엄청난 용기가 생겼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이 책을 읽고 한 발 내딛을 수 있는 작은 용기를 품었다는 것, 그리고 ‘과거 속의 나’보다는 변화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내가 있다는 사실’을 직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게 되었다.
정말 ‘미움 받을 용기’가 생길 때까지 나는 몇 번이고, 이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