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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창석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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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ㄱ) 프루스트와 마르셀

프루스트가 평생 단 한 권의 책만을 쓰려고 했다는 주장은 널리 인정받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하 <잃시찾>으로 표기)가 바로 그 책이고요. 하지만 그 전에도 프루스트는 오랫동안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잃시찾>의 주인공(이하 ‘마르셀’로 표기)과 저자 프루스트를 동일시하는 오류가 많은데, 적어도 글쓰기에 관한한 둘은 아주 다릅니다.

<잃시찾>의 주인공 마르셀은 항상 작가가 되고 싶어하면서도 평생 거의 글을 쓰지 않지요. 예외는 몇 개 되지 않습니다. 일단 어린 시절 꽁브레에서 마르탱빌르의 종탑에서 받은 인상을 마차에서 글로 옮긴 것이 첫 글이고요. 작품 후반에 <피가로>지에 기고한 글의 얘기가 나오고요. 그 외에 지나가면서 언급되는 것으로 ‘스완과 오데뜨의 사랑에 관한 소설 비슷한 글’을 쓰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번역을 했다는 말(프루스트의 러스킨 번역에 대한 암시)이 나오죠. 베르고트가 그의 글을 보고 ‘문장이 완벽하다’는 칭찬을 했다는 말이 <되찾은 시간>에 나오기도 하죠.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본격적으로 창작에 몰두하는 일은 없습니다. 작품 끝에 가서 겨우 결심을 할 뿐이죠. 그래서 마르셀은 자신의 의지박약을 항상 한탄하고 그것은 어머니와 할머니에게도 큰 고통을 안겨주죠.

반대로 프루스트의 삶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어도 굉장히 정력적이고 부지런한 작가의 인생이었습니다. 우선 20대 초반에 <즐거움과 나날들>을 내지요(제가 예전에 올린 게시물에 두 종류의 국역본에 대한 짧막한 설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아나톨 프랑스이 서문을 써주었고요. 여담이지만 아나톨 프랑스가 베르고트의 모델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죠. 사람들이 아나톨 프랑스에게 왜 프루스트의 <잃시찾>을 읽지 않냐고 묻자 “인생은 너무 짧고 프루스트는 너무 길다(la vie est trop courte, et Proust est trop long)”라는 재기발랄한 말을 남겼죠. 물론 <잃시찾>의 분량이 너무 길다는 말입니다.

아무튼 프루스트가 <잃시찾> 이전에 공식적으로 발표한 글은 <즐거움과 나날들> 외에 두 권의 러스킨 번역과 피가로 지에 실린 몇 개의 평문 등이 있습니다. 자세한 점은 책세상에서 나온 장 이브 타디에의 프루스트 전기를 참조하시고요. 러스킨 번역은 본문보다 역주와 해설이 더 긴 연구서에 가까운 형태였습니다. 그 외에 젊은 시절에 <장 상퇴이유>라는 제목으로 적지 않은 분량의 소설을 시도했고, 무엇보다 <생트뵈브 비판>이 있습니다.



(ㄴ) 생트뵈브와 전기주의

<생트뵈브 비판(Contre Sainte-Beuve)>을 보죠. 생트뵈브는 19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문학 비평가(이고 안 유명한 시인)입니다. 그는 실증주의에 입각해 작가의 삶을 연구한 후 그를 토대로 작품을 해석하는 전기주의 비평의 창시자이지요. 19세기 말 이후로 소르본 대학의 문학 연구는 지금까지도 이런 방향을 따르고 있습니다. 작가가 살던 당시의 사회상, 작가 개인의 전기, 사상사 등이 소르본의 주요 연구과제지요. 프루스트가 자기 책의 제목을 <생트뵈브에 반대하여>라고 달은 것은 이러한 전기주의 비평을 비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전기주의라고 해서 사실 그렇게 거창한 얘기는 아니구요. 한 마디로 '서정주는 친일파인데 그의 작품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문체가 힘차면 작가도 강인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인가?' 등의 문제에 관한 것이죠.

어쨌든 <생트뵈브 비판>에서 프루스트는 피상적 자아(사회적 자아)와 심층적 자아(창작의 주체로서의 자아)를 엄격히 구별하면서 작가의 삶에서 작품의 의미를 찾으려는 생트뵈브의 방법론을 격렬히 비난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잃시찾>에서도 중요한 미학적 테마가 되지요.

작품에 등장하는 위대한 예술가들(엘스티르, 베르고트, 뱅퇴이유 등)은 실제로 만났을 때는 하나 같이 예술적 재능을 전혀 감지할 수 없는 평범하고 우둔한 사람으로 보이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는 예술 창작에 관한 일말의 도움도 얻을 수가 없잖아요. 무엇보다 이 작품의 중심 줄거리 자체가 한평생을 사교계 출입과 수많은 연애로 낭비하던 주인공이 소설가로 거듭난다는 내용이고요. 거칠게 얘기하면 만나봤을때 정말 똑똑하고 재기발랄한 사람도 작품은 형편없을 수 있고 둔하고 말주변도 없고 호감이 안 가는 작가가 작품은 좋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견 당연한 얘기 같지만 의외로 지금까지도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하는 관점은 뿌리깊게 남아 있습니다. 프루스트 시대에는 더 했고요.  

더우기 이러한 구도가 저자의 실제 삶과 완벽하게 겹치면서 프루스트는 작품 자체에 있어서나 자신의 인생 자체에 있어서나 텍스트가 작가의 생애에서 완벽히 분리되는 모범적인 예가 되지요(프루스트 같은 사교계 속물도 거장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미 얘기한 것처럼 프루스트 자신이 워낙 자기의 개인사 때문에 작가로서 고난을 많이 겪었으니 작가의 삶과 작품을 분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히 들었겠지요.



(ㄷ) <생트뵈브 비판>


<생트뵈브 비판>은 미완의 원고입니다. 여기에는 게르망트 쪽으로의 산책 등 소설적 파트와 보들레르론, 발자크론 등의 문학 비평, 프루스트와 어머니 사이의 대화 같은 자전적 파트 등 다양한 장르의 단장이 혼재되어 있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생트뵈브 비판>이 <잃시찾>과 다른 독립된 작품이 아니라는거죠.

프루스트가 <생트뵈브 비판>을 시작한 것은 1905년경이고 <잃시찾>의 첫 권인 <스완네 집 쪽으로>(이하 <스완>)이 출판된 것은 1913년이지요. 프루스트는 처음 <생트뵈브 비판>을 시작할 때 이것을 순수한 비평서로 만들것인지 소설적 파트와 비평적 파트가 뒤섞인 책으로 만들지 고민합니다(이런 고민은 편지를 통해 확인되지요). 그러다가 이것 저것 뒤섞인 어정쩡한 상태로 글을 쓰기 시작하고 그런 식의 작업이 몇 년 동안 계속됩니다. 그래서 이미 여기에는 게르망트라는 이름도 나오지요. 그래서 프루스트는 1907년경 ‘소설을 써야하는가, 철학책을 써야하는가? 나는 소설가인가?’라는 질문을 원고 위에 적지요.

그러다 어느 순간 작품은 1인칭으로 쓰기로 결정하고 (그게 언제인지는 불분명하지만 1907년 이후인건 확실합니다) 그 때부터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스완네 집쪽으로>의 모습이 갖춰집니다. 문제는 현재의 <스완>이 거의 완성된 시점에서도 프루스트는 여전히 이 책을 <생트뵈브 비판>이라고 불렀다는 거죠. 그러다 책을 출판할 시점이 가까와져서야 겨우 <칼맞은 비둘기>, <마음의 간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의 이름 사이에서 고민하다 최종적으로 <잃시찾>으로 낙찰되지요.

따라서 <생트뵈브 비판>은 <잃시찾>과 구별되는 독립된 텍스트가 아닙니다. 전자를 쓰다가 천천히 조금씩 후자로 이행한 것이죠. 현재 책으로 나와있는 <생트뵈브 비판>은 1910년 이전의 원고들 중 <잃시찾>에 담기지 않은 것을 위주로 편집한 것이고요. ('생트뵈브 비판'은 한국어로는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ㄹ) 소설인가, 자서전인가?


<생트뵈브 비판>의 경우 비평서인가 소설책인가의 문제가 제기되었다면 <잃시찾>의 경우 주요 문제는 이것이 소설인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자서전인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잃시찾> 역시 비평서인가 소설인가 하는 질문이 생기기는 합니다. 에세이(한국적 의미의 수필이 아니라 진지한 사변적 글) 형식의 심리 분석, 언어 분석, 외교 분석, 전술 분석 등이 작품 속에 워낙 많잖아요.

하지만 <잃시찾>의 진짜 문제는 이것이 픽션인가 논픽션(자서전)인가의 문제이죠. 스완이나 게르망트 집안 등 허구적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므로 진짜 자서전이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워낙 작가 프루스트와 주인공 마르셀의 인생에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작품이 출간되고도 오랫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이 책을 프루스트가 자기 인생을 약간만 픽션화해서 바꾼 것이라 생각하고 있죠.

그런데 소설작품이 ‘자전적’이라는 것은 비평적 평가에 있어 상당히 불리한 요소가 됩니다. 더구나 <잃시찾>은 도저히 구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생각나는 대로 쓴 글처럼 보이기 때문에 문제는 워낙 심각하죠. 그래서 오랫동안 프루스트는 아름다운 문체와 훌륭한 심리분석이 돋보이는 회상록 작가라는 식으로 치부되었고, 이것이야말로 프루스트가 오랫동안 폄하된 주요 원인이지요.

특히 1권 <스완네 집 쪽으로>의 1부인 <꽁브레>의 경우 처음 읽을 때 도저히 스토리라인을 간파할 수 없을만큼 산만하고 무질서해 보이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이 제1권의 1부를 돌파하지 못하고 책을 놓게 되지요. 실제로 1913년 <스완>이 출판된 후로 구성의 부재를 둔 비난이 끊이질 않았고요.

여기에 주인공의 이름 문제가 애매모호하게 얽히면서 (1인칭 서술자-주인공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습니다만 딱 두 번 '작가인 내 이름을 빌어준다면 마르셀'이라고 나옵니다) 자서전이라는 의혹은 더욱 증폭되지요. 프루스트 본인은 자기 작품이 엄격한 구성을 지니고 있고 자서전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잘 먹히질 않았죠.

 -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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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1-04-14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흥미로웠습니다.^^
 
시학
아리스토텔레스 외 지음, 천병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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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롱기누스의 '숭고론'이 나중에 출간되기는 했지만 여러모로 희랍/라틴어 전문가인 천병희 선생의 번역이 훨씬 믿음직하니 이곳에 글을 씁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플라톤의 문학에 관한 구절들, 호라티우스의 시학과 더불어 롱기누스의 숭고론이 합본된 이 책은 서양 고대 문학이론에 대한 최고의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 롱기누스의 숭고론에 대해 몇 마디 적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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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희랍어, 라틴어 전문가가 번역한지라 믿음이 가는군요. 예전에 아리스토텔레스 <시학>도 천병희 판본을 두 종류 불어본과 대조하면서 보았는데 용어 선택에 불만이 없는건 아니지만 정말 훌륭했거든요. 숭고론은 예전에 불어로 읽었는데 아무래도 감이 안 오는 부분이 꽤 있어서 국역본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만 꾸고 있었는데 두 종류나 나왔죠. 당근 천병희 쪽을 택했지만요. 
 
위 롱기누스 숭고론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문체론 책입니다. 몇 행짜리 운문들을 인용한 후 분석하는 방식 때문인지 꼭 강의 듣는 기분이죠. 

참 흥미로운 책이지만 그동안 이상하게 저항감이 들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이유를 알겠더군요. 칸트 미학이나 낭만주의의 성립에 큰 영향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텍스트라는 점도 그렇지만 (예컨대 ‘흠있는 숭고가 흠없는 범용보다 낫다’는 구절만 봐도 알겠지만 워낙 숭고론을 수사학 내부의 안티 수사학이라고 하잖아요) 무엇보다 ‘시’라는 걸 워낙 싫어하는 제 체질 때문이더라구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워낙 내러톨로지(서사학)이고 호라티우스 역시 비슷하니까요. 특히 불어판으로 읽으면서 고어풍의 싯구들(당근 고대시를 인용한거니)이 튀어나올 때마다 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었거든요. 사실 외국어로 봐서 제일 이해하기 힘든게 시잖아요. 서정시 장르를 개무시한 아리스토텔레스님께 경배를!!! 같은 이유에서 낭만주의자들에게 저주를!!! (이상하게 옛날 사람들을 두고 내 편이냐 적이냐 편가르기 하는 버릇이 생긴 것 같군요) 


이 책에 거부감을 가진 또 하나의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애매함 때문이죠. 예를 들어 동일한 기법을 사용한 두 개의 시구를 보여준 후 한쪽은 실패한 것이고 한쪽은 성공한 것인데 그것은 ‘감정의 깊이’나 ‘사유의 크기’의 차이 때문이다라고 선언하는게 롱기누스의 특기거든요. 물론 제가 희랍어 원문을 읽을 능력이 안 되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제 눈에는 어느 쪽이 나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런 식의 구별은 안 하느니만 못한 것 같아서요. 물론 수사학자들도 비슷한 짓거리를 많이 하지만 그렇게까지 주관적 판단에 의거하는 일은 없거든요. 판단은 주관적이어도 말로는 이성적 근거를 들이대죠.

어쨌든 아무래도 번역판으로 읽으니 세부적인게 눈에 잘 들어오더군요. 일단 시구들이 전부 번역이 되어 있어 다행이고 희랍 문학에 대한 역주들도 달려있으니까요. 제가 가지고 있는 두 종류의 불역본 모두 그런쪽 역주가 부족했거든요. 전반적으로 우리말도 매끄럽고 용어선택도 괜찮은게 오히려 같은 역자의 ‘시학’ 번역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빼먹은 구절이 좀 보이지만 가독성이 워낙 좋아서요. 

이 책에서 문체 분석의 예로 든 작품들 중 이채로운 것은 구약성경과 플라톤이죠.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는 성경의 첫 문장은 정말 숭고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니 놀라울 건 없지만 고대 수사학 책에 기독교의 흔적이 있다는게 신기하죠. 물론 중세에 기독교 수사학이 엄청 발전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애초에 수사학과 기독교는 상극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면 다름 아닌 숭고론이기에, 안티 수사학의 싹을 내포하고 있는 책이기에 기독교와 연결될 수 밖에 없는 것도 같습니다(굉장히 흥미롭게도 이 책  끝에서는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간 것과 문학의 쇠퇴 사이의 연관성을 언급하면서 제정이라도 상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분명 롱기누스는 정통적 의미의 수사학자는 아닌거죠. 수사학은 민주주의 없이는 살 수 없으니까요).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의 수사학/시학이 '계산 가능한 이성적 기법을 통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적 효과를 창출'하는 것이 목표라면 그러니까 문학이나 연설이 독자/청중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지만 창작/집필에 관해서는 철저히 이성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려 한다면 (달리 구조주의자들이 수사학을 좋아하는게 아닙니다) 롱기누스 수사학은 온갖 애매한 표현을 남발해가면서 감정적 영역에 올인하고 있죠. 예술작품을 작가의 감정, 영감, 천재성의 표현으로 보는 낭만주의적 관점의 근원에 이놈의 롱기누스가 있는겁니다. (당근 플라톤의 영감론의 전통에 서있고 칸트 미학의 성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죠).

아무튼 우상을 멀리하라는 기독교의 계율은 다름 아닌 미메시스와 구상성에 대한 거부이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로 하지 말라는 말인데 그거야말로 숭고 시학의 극단적 버전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수사학이 인간과 이성과 현실의 규칙이라면 숭고는 신성과 감성과 무한성의 탐구니까요. 물론 롱기누스는 고대 수사학자답게 숭고도 천재뿐 아니라 범인도 노력과 규칙을 통해 익힐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요. 


플라톤의 경우가 흥미롭다는 것은 수사학자들의 공적 2호(1호는 물론 소크라테스죠!!)인 플라톤을 인용한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플라톤을 철학자가 아닌 작가로서 인용하기 때문이죠. 국역본으로 보건 불역본으로 보건 저는 플라톤에게 무슨 문체적 가치가 있다고 느낀 적은 없거든요. 물론 평소에 ‘플라톤은 훌륭한 소설가이다. 철학자로는 허접하지만’이라고 외치고 다니던지라 단순무식한 초과격 억지, 정신 산란하게 만드는 궤변, 얼렁뚱땅 비논리성 등에 대한 그의 재능은 익히 인정하고 있었지만 그가 훌륭한 문장가라는 말까지 들으니 참 화가 납니다. 롱기누스가 희랍놈이니 플라톤의 희랍어를 두고 제가 반박할 수도 없구요(그나마 위안이 되는건 롱기누스가 플라톤을 노력형 문장가로 간주한다는 거죠).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롱기누스의 맛은 ‘숭고를 숭고하게’ 표현할 줄 알았던, 그러니까 비평언어가 문학언어를 닮는 경향을 창시했다는데 있겠죠. 뭐 숭고한지까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예컨대 수사적 의문(진짜로 몰라서 묻는게 아니라 동의를 구하기 위해 의문문을 취하는 문형)에 대해 설명하면서 계속 수사적 의문문을 사용하고 돈호법을 설명하면서 돈호법을 사용하는 따위의 테크닉은 제 눈에도 들어오더군요.

아무튼 오랫동안 sublime이라는 말을 숭고나 숭엄으로 옮기는게 옳은지 고민을 해왔었는데 이제 보니 꽤 적절한 용어인 것 같습니다. 물론 작년에 프랑스 모 잡지 표지에서 본 Sublime Adjani 같은 표현이라면 좀 생각을 더 해봐야겠지만요. (이자벨 아자니는 정말 sublime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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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 1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이종오 옮김 / 리잼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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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국에서는 그다지 주목 받는 분야가 아니지만 '수사학'이라는 학문은 서구에서 소피스트 시대에서 18세기까지 2천년 이상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던 인문학의 대표 학문이었다. (오직 '철학'만이 이에 비교될만한 위세를 지니고 있었다).

아테네와 로마 시대에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웅변술(의회에서 특정 정책을 지지, 반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웅변, 재판에서 변론을 위한 웅변)의 교육으로 시작되었던 수사학은 이후 실용적인 '화술', '글쓰기 기술'로뿐 아니라 우리가 지금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창작과 비평의 원리를 제공하는 준거였다. 따라서 16-18세기에 문학비평가는 종종 '수사학자'라고 불리웠으며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공교육에서 글쓰기 학습을 위해 정규교육의 중요과목으로 존재해 왔다. (20세기초까지 프랑스에서 고등학교 3학년은 '철학반', 2학년은 '수사학반'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었다).

수사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저서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중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가장 영향력이 크고 대표적인 저서로 2천년동안 읽혀왔다.

그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이 세 권으로 분권되어 한국어로 첫 권의 번역이 나온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재작년에 나온 키케로의 수사학책도 반가왔지만 이만큼은 아니다).



우선 장점들이 눈에 띈다. 희랍 철학 전공자가 아닌 수사학사를 전공한 불문학자가 번역한 이 책은 수사학의 개념에 대한 역자의 분명한 이해에 기반해 명료하면서도 부드러운 번역을 제공한다. 애초에 강의록으로 준비되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장이니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술술 읽히는 문장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 역자의 노고는 칭찬해 마땅하다. 사실 철학 전공자들이 이런 고전을 번역할 때는 쉬운 문장도 어렵게 옮기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 그런 면에서 이 번역본의 번역의 수준은 매우 뛰어나다.

하지만 심각한 결함들도 적지 않다. 처음으로 나온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의 번역이고 한번 이렇게 번역판이 나오면 또 20여년 동안은 새로운 번역본이 나오기 어려운 한국 학술/출판/번역 풍토를 감안할 때는 매우 아쉬운 일이다.

우선 역자는 불문학자로서 프랑스의 les belles lettres본을 대본으로 번역을 했다. 물론 고대희랍어에 능통한 학자들이 언제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분야의 책인) 이 책을 번역해줄지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니 중역이라고 해도 그 자체로 폄하할 이유는 없다. 더구나 이 책이 이토록 잘 읽히는 번역본이 된 것은 희랍어본이 아닌 불어본을 대본으로 했다는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중요한 고전을 번역한다면 설사 희랍어를 공부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희랍어 전공자들에게 자문을 구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번역 좋기로 소문난 독어판을 참조하던지, 그것도 안 되면 최소한 영역본과의 전체 대조는 했어야 옳다. 하지만 약간 어색한 구절들을 볼때마다 역자가 '불어는 잘 하지만' 다른 언어 판본을 전혀 대조할 생각을 하지 않은 것 같다는 추측이 든다.

이것은 단순히 번역의 질의 문제가 아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번역의 질 자체는 굉장히 좋다).

한국의 외국문학 전공자들이 종종 저지르는 어처구니 없는 잘못을 역자는 그대로 저지르고 있다. (나 역시 수사학에 관심있는 불문학을 전공 연구자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역자는 꽤 많은 희랍어 고유명사나 책제목을 불어식으로 표기하고 있다. 예컨대 플라톤의 '파이드로스'를 불어식 표기인 Phedre를 따라 그냥 '페드르'라고 적고 있다. 더구나 일관성 없이 어떤 것은 희랍식으로 어떤 것은 불어식으로 적는 만행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핵심 용어에 원어병기를 할때 희랍어를 다는 것이 아니라 뻔뻔하게 불어를 병기하고 있다. 번역의 대본인 레벨레트르 판본은 희랍어/불어 2개국어 대조본이다. 희랍어 전공자에게 부탁했다면 주요용어의 희랍어를 찾아내는 작업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희랍어가 일반 독자에게 낯설다면 최소한 라틴어식 음차어로라도 적어야 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책 뒤쪽에 적지 않은 분량의 해설이 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주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 정도 고전이라면 수사학 개론서를 세네권 읽은 관심 독자뿐 아니라 일반적인 대학생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수사학 관련 책을 보지 않은 사람이 '토론적 장르'나 '제시적 장르'라는 말을 듣고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까? ('토론적 장르'란 의회에서의 정치 연설을 가리키는 것이고 '제시적 장르'라고 역자가 번역한 것은 장례식, 추모식, 생일파티 등에서 특정인의 공덕을 칭송하는 연설문의 장르를 가리킨다).

토론적 장르나 제시적 장르라는 역어의 선택을 문제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역주 몇 개만 각주로 달았어도 본문의 가독성이 훨씬 좋았을 것이란 얘기다. 공들여 좋은 번역을 해놓고 이런 기본적인 사항이 빠져 '어렵고 지루한' 책을 만들어버리는 것은 좀 바보 같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책의 앞쪽에는 프랑스 판본의 해설 서문을 번역해두고 있는데 이 번역본만으로 보면 이것이 한국어 역자가 쓴 것인지 프랑스 사람이 쓴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은 진짜 범죄 수준이다) 대본의 쪽수가 없다는 것이다. 희랍, 라틴의 고전들은 모든 서구 국가에서 공통으로 쓰는 대본들이 있게 마련이고 대본정립시 관련 원칙에 따라 각 문단마다 매겨놓은 번호(쪽수+문단번호)가 있다. (1747a, 1486c하는 식으로). 그래서 천병희 번역의 호라티우스 시학을 읽다가 번역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불역본이나 영역본을 참조할때 딱 저 번호만 찾으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희랍,라틴 고전의 영역본, 불역본, 국역본을 봤지만 이 쪽수가 본문 옆에 적혀 있지 않은 것을 본 기억은 없다. (예전에 나온 한국의 문고판 플라톤 번역본을 빼면). 더구나 이 책은 포켓판으로 나온 것도 아니고 그다지 두껍지도 않은 책을 세 권으로 분권해 비싼 값으로 팔고 있으니 (영역본이나 불역본은 당연히 한권이다) 적어도 한국어판에서는 정본 구실을 하겠다는 야심이 있는 책일텐데 이런 기본적 상식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이 번역의 대본이 된 프랑스어 판본에는 저 쪽수가 기재되어 있다).

이런 면을 보면 역자 자체도 문제지만 편집자의 기본적 양식이 의심스럽다. (물론 책의 조판이나 맞춤법 같은 사항은 매우 만족스럽다).

모쪼록 앞으로 나올 2권과 3권에서는 이런 어이없는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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