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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 1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이종오 옮김 / 리잼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한국에서는 그다지 주목 받는 분야가 아니지만 '수사학'이라는 학문은 서구에서 소피스트 시대에서 18세기까지 2천년 이상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던 인문학의 대표 학문이었다. (오직 '철학'만이 이에 비교될만한 위세를 지니고 있었다).
아테네와 로마 시대에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웅변술(의회에서 특정 정책을 지지, 반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웅변, 재판에서 변론을 위한 웅변)의 교육으로 시작되었던 수사학은 이후 실용적인 '화술', '글쓰기 기술'로뿐 아니라 우리가 지금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창작과 비평의 원리를 제공하는 준거였다. 따라서 16-18세기에 문학비평가는 종종 '수사학자'라고 불리웠으며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공교육에서 글쓰기 학습을 위해 정규교육의 중요과목으로 존재해 왔다. (20세기초까지 프랑스에서 고등학교 3학년은 '철학반', 2학년은 '수사학반'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었다).
수사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저서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중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가장 영향력이 크고 대표적인 저서로 2천년동안 읽혀왔다.
그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이 세 권으로 분권되어 한국어로 첫 권의 번역이 나온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재작년에 나온 키케로의 수사학책도 반가왔지만 이만큼은 아니다).
우선 장점들이 눈에 띈다. 희랍 철학 전공자가 아닌 수사학사를 전공한 불문학자가 번역한 이 책은 수사학의 개념에 대한 역자의 분명한 이해에 기반해 명료하면서도 부드러운 번역을 제공한다. 애초에 강의록으로 준비되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장이니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술술 읽히는 문장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 역자의 노고는 칭찬해 마땅하다. 사실 철학 전공자들이 이런 고전을 번역할 때는 쉬운 문장도 어렵게 옮기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 그런 면에서 이 번역본의 번역의 수준은 매우 뛰어나다.
하지만 심각한 결함들도 적지 않다. 처음으로 나온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의 번역이고 한번 이렇게 번역판이 나오면 또 20여년 동안은 새로운 번역본이 나오기 어려운 한국 학술/출판/번역 풍토를 감안할 때는 매우 아쉬운 일이다.
우선 역자는 불문학자로서 프랑스의 les belles lettres본을 대본으로 번역을 했다. 물론 고대희랍어에 능통한 학자들이 언제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분야의 책인) 이 책을 번역해줄지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니 중역이라고 해도 그 자체로 폄하할 이유는 없다. 더구나 이 책이 이토록 잘 읽히는 번역본이 된 것은 희랍어본이 아닌 불어본을 대본으로 했다는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중요한 고전을 번역한다면 설사 희랍어를 공부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희랍어 전공자들에게 자문을 구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번역 좋기로 소문난 독어판을 참조하던지, 그것도 안 되면 최소한 영역본과의 전체 대조는 했어야 옳다. 하지만 약간 어색한 구절들을 볼때마다 역자가 '불어는 잘 하지만' 다른 언어 판본을 전혀 대조할 생각을 하지 않은 것 같다는 추측이 든다.
이것은 단순히 번역의 질의 문제가 아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번역의 질 자체는 굉장히 좋다).
한국의 외국문학 전공자들이 종종 저지르는 어처구니 없는 잘못을 역자는 그대로 저지르고 있다. (나 역시 수사학에 관심있는 불문학을 전공 연구자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역자는 꽤 많은 희랍어 고유명사나 책제목을 불어식으로 표기하고 있다. 예컨대 플라톤의 '파이드로스'를 불어식 표기인 Phedre를 따라 그냥 '페드르'라고 적고 있다. 더구나 일관성 없이 어떤 것은 희랍식으로 어떤 것은 불어식으로 적는 만행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핵심 용어에 원어병기를 할때 희랍어를 다는 것이 아니라 뻔뻔하게 불어를 병기하고 있다. 번역의 대본인 레벨레트르 판본은 희랍어/불어 2개국어 대조본이다. 희랍어 전공자에게 부탁했다면 주요용어의 희랍어를 찾아내는 작업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희랍어가 일반 독자에게 낯설다면 최소한 라틴어식 음차어로라도 적어야 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책 뒤쪽에 적지 않은 분량의 해설이 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주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 정도 고전이라면 수사학 개론서를 세네권 읽은 관심 독자뿐 아니라 일반적인 대학생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수사학 관련 책을 보지 않은 사람이 '토론적 장르'나 '제시적 장르'라는 말을 듣고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까? ('토론적 장르'란 의회에서의 정치 연설을 가리키는 것이고 '제시적 장르'라고 역자가 번역한 것은 장례식, 추모식, 생일파티 등에서 특정인의 공덕을 칭송하는 연설문의 장르를 가리킨다).
토론적 장르나 제시적 장르라는 역어의 선택을 문제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역주 몇 개만 각주로 달았어도 본문의 가독성이 훨씬 좋았을 것이란 얘기다. 공들여 좋은 번역을 해놓고 이런 기본적인 사항이 빠져 '어렵고 지루한' 책을 만들어버리는 것은 좀 바보 같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책의 앞쪽에는 프랑스 판본의 해설 서문을 번역해두고 있는데 이 번역본만으로 보면 이것이 한국어 역자가 쓴 것인지 프랑스 사람이 쓴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은 진짜 범죄 수준이다) 대본의 쪽수가 없다는 것이다. 희랍, 라틴의 고전들은 모든 서구 국가에서 공통으로 쓰는 대본들이 있게 마련이고 대본정립시 관련 원칙에 따라 각 문단마다 매겨놓은 번호(쪽수+문단번호)가 있다. (1747a, 1486c하는 식으로). 그래서 천병희 번역의 호라티우스 시학을 읽다가 번역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불역본이나 영역본을 참조할때 딱 저 번호만 찾으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희랍,라틴 고전의 영역본, 불역본, 국역본을 봤지만 이 쪽수가 본문 옆에 적혀 있지 않은 것을 본 기억은 없다. (예전에 나온 한국의 문고판 플라톤 번역본을 빼면). 더구나 이 책은 포켓판으로 나온 것도 아니고 그다지 두껍지도 않은 책을 세 권으로 분권해 비싼 값으로 팔고 있으니 (영역본이나 불역본은 당연히 한권이다) 적어도 한국어판에서는 정본 구실을 하겠다는 야심이 있는 책일텐데 이런 기본적 상식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이 번역의 대본이 된 프랑스어 판본에는 저 쪽수가 기재되어 있다).
이런 면을 보면 역자 자체도 문제지만 편집자의 기본적 양식이 의심스럽다. (물론 책의 조판이나 맞춤법 같은 사항은 매우 만족스럽다).
모쪼록 앞으로 나올 2권과 3권에서는 이런 어이없는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