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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그린 화가, 에곤 실레
에스터 셀스던.지넷 츠빙겐베르거 지음, 이상미 옮김 / 한경arte / 2024년 10월
평점 :
몇 점의 작품으로만 알고 있던 에곤 실레의 예술관과 진짜 모습, 그의 가족과 스승, 몸담았던 분야까지 알아갈 수 있었다. 에곤 실레의 유년기 형성된 불안정한 가족관계와 성의식, 급변하는 가정의 재정상황 등 여러 가지의 배경이 되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절망하거나 노동 계층으로 들어갔겠지만 그림에 재능이 있었던 에곤 실레는 미술 아카데미에 합격하고 '키스' 작품으로 유명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눈에 들어 그의 제자로써 장식적인 미술의 세계로 들어가고 이후 자신의 스타일을 정립한 이후에도 클림트에게서 배운 것들을 잘 활용한다.
그는 뒤틀린 표정이나 실핏줄까지 보이는 사실적인 피부 등, 오늘날 우리가 가장 많이 보는 그만의 스타일을 구축해 에로시즘의 경계를 넘나들며, 모델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가혹할 정도의 표현을 해낸다. 예술가로써 억압받는 것을 극도로 용납하지 못했던 그는 풍기문란 등 혐의로 몇 주 정도 옥살이를 하게 되지만 그 기간을 순교자적인 행위로 인식한다. 결과적으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가 되었기 때문에 이 점은 현대의 대중들에게는 부각되지 않지만, 예술을 억압하지 못하게 하면서도 협의되지 않은 예술활동에서 상대가 존중받을 권리는 억압한 그의 이중적인 태도는 별로 지지해주고 싶지 않다.
실레는 예술에만 집중하는 듯 하면서도 신분상승을 위해 본래의 연인 발리와 헤어지고 중산층 가정의 에디트와 결혼하는데, 에디트와의 결혼 이후 마음의 안정을 찾고 그의 날카롭거나 어두웠던 화풍이 조금 느슨해지는 걸 보면 예술가의 세계는 혼자만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주변 환경에 큰 영향을 받아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음이 느껴진다. 에디트와의 결혼 이후 실레와의 교류를 완전히 끊고 전쟁터로 나간 발리는 당시 여성에 대한 선입견을 깨버리는 파격적인 행보라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그는 주변의 그의 지지자와 후원자들의 지원을 받고 그들을 위한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는데 정말 개성적이고 독특하다.
실레의 작품은 인간의 가장 어두운 내면, 때로는 스스로의 내면과 의욕이 떨어져 나간 신체, 삶을 내려놓은 사람들, 자신의 불안정함과 고뇌가 반영된 풍경화 등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내년 3월 3일까지 진행되는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회를 통해 스케치부터 대형 유화, 밑그림도 없이 휙휙 그려내기도 했던 그의 천재적인 표현력을 담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19세기 말 비엔나 분리파 예술가들의 작품과 그 특징을 문화사적 흐름으로 조명하며, 에곤 실레를 비롯한 여러 비엔나 작가들의 작품들도 함께 전시된다. 책을 읽고 전시를 보면 좀더 풍성하게 그의 예술관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