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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
사이토 뎃초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평점 :
루마니아어로 글을 쓰는 독특한 일본인 작가 사이토 뎃초의 에세이. 사이토 뎃초는 취업실패와 크론병 등 여러 외부요인이 겹치며 자칭 히키코모리로 살아가지만 어엿한 루마니아 작가다. 영화 덕후였던 그는 영화비평을 써왔고, 우리의 선입견 속 히키코모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의지와 친화력을 끌어올려(본인도 애매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재밌다) 페이스북을 통해 루마니아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런 의욕적인 모습과 언어적 피드백을 수용하려는 자세 덕분에 루마니아 출판계와 관련된 사람들을 알게 되고, 그들의 도움 속에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루마니아에서 확립한다.
이 책은 단순히 모국어와 다른, 심지어 마이너한 언어로 소설을 쓴다는 스토리가 전부가 아니다. 다른 언어로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가 거쳐왔던 세상, 주변의 도움(크게 생각하면 인류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어떻게 루마니아까지 손을 뻗었는지 그 방법과 자세에 대한 모든 이야기이다. 사실 한국인이라고 해서 다 소설을 내지는 않는다. '작문'한다는 것은 일상회화를 넘어선 어휘력과 문법적 지식, 그리고 감성과 자신만의 뚜렷한 가치관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마음을 위로하는 동시에 언어의 재미를 알려준 루마니아 영화들, 그리고 그 영화를 시작으로 한 나라의 문학과 영화를 섭렵하고 싶다는 그 열망은 작가를 루마니아어를 즐겁게 공부하게 만들었다. 꼭 회화라는 장르에 얽매인 언어공부가 아니어도 된다는 점. 나의 목표가 독서와 영화라면 정적인 취미로써 새로운 언어 공부를 해도 좋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고 오히려 강박에서 벗어나 언어공부를 좀더 편안하게 취미처럼 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불어 작가의 '마이너한 언어를 배우려는 나, 완전 힙해...'라는 생각을 보고 웃음이 나면서도 크게 공감했다. 언어라는 존재를 어렵게 생각하기보다는 나의 힙함을 담당하는 존재로 보는 것도 삶이 즐거워지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경험은 누구든 만들어낼 수 있지만, 아무나 만들지는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미래에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미래에 만날 그 좋아하는 것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현재의 삶이 무료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살아가는 중간에 나와 맞는 무언가를(작가에게는 루마니아어) 반드시 발견할 수 있고,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작가의 삶으로 그것이 증명되었으니 나 또한 미래의 전환점을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