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성동물
황희 지음 / 몽실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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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좀비를 소재로 하는 것들은 공포 장르를 선호하는 나의 이목을 끈다. 단순히 깜짝 놀래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공포영화들과는 다르게 좀비물은 탄탄한 스토리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치들이 적절히 잘 버무려진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황희 작가의 '야행성동물' 또한 놓칠 수 없는 작품이었다.

보통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감염된다는 좀비물의 흔한 설정과는 다르게 야행성동물은 마약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다. 확실히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갑자기 퍼져나간다는 설정보다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는 마약을 소재로 잡은 것은 이야기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마약이라는 게 아주 흔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현실세계에서 거래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해외에서는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약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좀비로 변하는 과정을 더욱 소름끼치게 만드는 요소가 바로, 독자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놓아두는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 검문관으로 일하는 한나가 미국에서 시작된 마약성 좀비들을 피해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되는 이 소설은 예측을 벗어나는 사건들의 연속이다.

등장인물들의 안녕을 바라며 숨가쁘게 책장을 넘기는 동안 예상을 뒤엎는 사건들이 끊임없이 터져 정신없었지만 그럼에도 뒷 이야기가 궁금해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다음장을 읽어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좀비라면 무조건 죽이려는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야행성동물에서는 사람들을 다시 되돌리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생사가 달린 그 순간에도 좀비들을 죽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소설의 내용이 실제로 일어날 리 없는 가상의 상황이라는 확신이 들면서도 왠지모르게 섬뜩해진다. 적어도 좀비는 없는 세상에 살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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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삼킨 소년
트렌트 돌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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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내게 특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필독도서로 읽었던 책 중에서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 특별하고 오래된 책은 '5학년 필독도서'라는 글씨와 내 이름이 함께 적혀진 채 책장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어렸을 때, 제제의 성장 이야기에서 어떤 생경한 감정을 느꼈던 순간의 그 기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랬기 때문에 엘리의 성장을 담은 트렌트 돌턴 작가의 '우주를 삼킨 소년'은 내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필독도서처럼 느껴졌다.

주인공 엘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다. 술을 마시며 집에 틀어박혀 책만 읽는 아빠와 마약에 빠졌던 엄마, 엄마를 마약에 빠지게 만들었다 다시 꺼내준 새아빠, 말을 하지 않는 형과 전설의 탈옥왕 베이비시터 슬림 할아버지까지, 모두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채 함께 살아간다.

어린 아이인 엘리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이 책은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어린이의 눈을 통해 묘사된 세상은 적나라하게, 거칠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히 어른들의 시각에서 에둘러 포장된 세상보다 솔직하다. 아이는 그저 보이는 대로 자신의 주변을, 자신이 속한 세계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린시절을 거쳐 점점 성장해나가는 엘리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마약과 범죄에 연관된 엘리의 삶은 고난과 역경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어린 소년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런 엘리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진심으로 엘리를 위해주는 모습을 통해 단순히 겉으로만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저 좋은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기만 하면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들은 진심으로 엘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네 과거도, 엄마도, 아빠도, 네 출신도 상관없어. 그저 선택일 뿐이야.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되는 건 말이다. 그게 다야.

351p

사랑한다고 해서 상처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한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결국 사랑이 상처를 치료하고 새살이 돋아나게 만든다. 다시 앞으로 나아가도록 손을 내밀어준다. 이 소설은 한 소년의 상처투성이 성장 과정을 통해 이를 일깨워준다.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을. 사랑의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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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 남성작가 편 - 세계문학의 흐름으로 읽는 한국소설 12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이현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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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편과 남성편으로 나뉘어져 있는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은 두 책 모두 반영론적 관점에서 작품과 작가를 분석하고 있다. 여성편과 마찬가지로 남성편 또한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굵직한 작가들과 작품들을 다루고 있다. 두 책 모두를 읽었지만 약간의 다른 점이 있다면 익숙하게 느낀 작가들의 시대가 정반대였다는 것이다. 여성작가편에서는 박완서, 공지영, 황정은 작가와 같이 현대 작가가 익숙한 느낌이었다면, 남성편에서는 최인훈, 이승옥, 이청준, 조세희 작가 등 근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에 더 익숙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교과서에 실린 작품들 때문에 더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광장이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관촌수필과 같은 익숙한 작품들에 대한 분석을 읽었을 때는 잊고 있던 학창시절의 수업이 다시 새록새록 떠올랐다. 분명 익숙한 작품이지만 철저히 시험을 위해 분석했던 그때와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그 당시에도 시대상에 대해 배우긴 했지만 단순히 암기를 위한 공부였고 키워드를 외우기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서술되어있는 이 책을 통해 작품을 이해하고 더 깊이 느낄 수 있었고 작품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여러 작가들의 이야기중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김승옥 작가에 대한 파트였다. 김승옥 작가에 대해 잘 알지 못 한 채로 '무진기행'을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읽을 당시에는 줄거리가 독특하다는 생각밖에는 하지 못했다. 그렇게 오래 전에 스치듯 보았던 작품이 김승옥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반영된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 책장 속에 묵혀둔 무진기행을 다시 펼쳐보고 싶어졌다. 작가의 유년시절과 인생에 대해 알게 되니 작품을 좀 더 꼼꼼하게 읽어보고 싶어졌다.

책에 수록된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은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본 듯 한 낯익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들 외에 읽어본 작품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도 계속해서 책들이 쏟아져나오고, 읽을거리들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미 쓰여진 옛날 작품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학교에서 읽어봤다는 핑계로, 왠지 공부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는 이유로 멀리했던 작품들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좀더 배경지식이 생긴 지금은 작품을 있는 그대로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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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미드나이트
릴리 브룩스돌턴 지음, 이수영 옮김 / 시공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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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종말에 관한 아름답고 쓸쓸한 이야기.

뒷표지

세상의 종말에 대한 이야기가 쓸쓸할 순 있어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책 소개를 읽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었다. 종말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아름다움일까.

이 이야기는 북극에 한 어린 소녀와 함께 고립된 노인의 이야기와 목성을 탐사하는 임무를 수행했지만 지구와의 통신이 끊긴 우주비행사들의 이야기이다.

천체를 관측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는 어거스틴은 모두가 천문소를 떠날 때 북극에 남기로 결정했다. 혼자인 줄만 알았던 그는 매트리스에 웅크리고 있는 한 소녀를 발견한다. 소녀를 돌보고 보살피는 과정에서 그는 젊은 시절의 그를 떠올렸고 자신이 상처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랑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소녀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우주선의 통신원 설리는 목성을 탐사하는 임무를 무사히 수행하고 지구의 연락을 기다린다. 하지만 통신장비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지구와 연락이 닿지 않자 대원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히게 된다.

지구와 우주라는 서로 다른 공간에 머물고 있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외부와 단절된 채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부와 어떤 연락도 하지 못 한 채로.

할 일을 모두 하고 나게 되면 시간이 너무 많아진다. 규칙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할 때는 그냥 주어진 일을 하면 된다. 그렇게 하나씩 조금씩 해결하다보면 시간을 자연스레 흐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규칙적인 패턴에서 벗어나게 되면 시간에 공백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결국 거대한 시간의 여백을 상념이 채우게 된다. 끊임없이 생각이 밀려들어 공간을 메꾼다. 그곳에는 회한과 후회가, 두려움과 공포가, 그리움이 존재한다. 그렇게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여러 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머리를 점령하고 정신을 점령하게 되는 것이다. 어거스틴도 설리와 대원들도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절망 속을 유영하게 된다. 그렇기에 기적적으로 소통에 성공했을 때의 감정들이 더욱 벅차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 하는 상황에서 그저 주어진 현재를 살아가고 곁에 있는 이들과 나아간다는 줄거리가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장 이후에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 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미래가 너무 힘들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은 극한에 몰린 사람들의 아름다운 생존기라고 할 수 있겠다. 아름다운 종말이라는 말이 이제야 공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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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 여성작가 편 - 세계문학의 흐름으로 읽는 한국소설 10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이현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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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은 1960년대 부터 2010년대 까지의 여성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분석과 비평을 담고 있다. 초판 서문에도 잘 나와 있듯이 작가는 작품을 '반영론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분석한다. 그렇기에 각 시기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그 당시의 시대상과 밀접하게 연관시켜 작품을 평가하고 있다.

이 책에서 다뤄지는 작가는 총 열 명이다. 내게 익숙한 작가들의 이름도 보였지만 그렇지 않은 작가들의 이름도 꽤 있었기 때문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 더욱 기대가 되었다.

목차를 살펴보면서 나는 본능적으로 내가 잘 알고 있는 작가의 파트부터 읽으려고 했지만 시간의 흐름대로 읽어야 한국문학의 흐름을 좀 더 잘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시간의 순서대로 읽기 시작했다. 서론에 나왔던 것처럼 저자는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와 작가의 모습을 철저하게 반영해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작품이 그 시대를 잘 나타내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작가의 경험과 연관짓기도 하고 당시의 분위기와 연관짓기도 한다.

그런데 조선의 유교적 문화에는 상인과 상업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 거기에다가 일본제국주의도 한통속인데, 거시적인 시각에서 보면 근대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제국주의로 치달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대, 자본주의, 그리고 이들의 이기주의와 폭력성을 모두 동일시하면서 통째로 거부하는 태도가 나오게 된다.

52~53p

생각해보니 나는 반영론적 관점에서 문학작품을 읽었던 적이 거의 없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배울 때는 작품을 시대와 연관지어 배우지만 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철저히 효용론적 관점이나 내재적 관점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게 중요한 것은 작품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나 문체와 표현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자세하고 분석적인 설명으로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 학교에서 듣던 문학수업의 심화 내용을 수강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학을 좋아하지만 단순히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작품이 시사하는 바를 겉핥기로 훑고 지나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작품의 깊이를 느끼기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감상에도 배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에 언급된 작가들의 작품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시대를 어떻게 표현했을지도 궁금했지만 기본적인 배경지식을 쌓은 후 감상한 작품들이 내게 어떤 감동과 감정을 가져다줄 지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그리고 이미 읽어본 책들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눈으로 읽어내리기만 했던 작품을 다시 읽었을 때 느낌이 또 다를 것 같다.

좋은 문학 수업을 들은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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