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종말에 대한 이야기가 쓸쓸할 순 있어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책 소개를 읽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었다. 종말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아름다움일까.
이 이야기는 북극에 한 어린 소녀와 함께 고립된 노인의 이야기와 목성을 탐사하는 임무를 수행했지만 지구와의 통신이 끊긴 우주비행사들의 이야기이다.
천체를 관측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는 어거스틴은 모두가 천문소를 떠날 때 북극에 남기로 결정했다. 혼자인 줄만 알았던 그는 매트리스에 웅크리고 있는 한 소녀를 발견한다. 소녀를 돌보고 보살피는 과정에서 그는 젊은 시절의 그를 떠올렸고 자신이 상처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랑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소녀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우주선의 통신원 설리는 목성을 탐사하는 임무를 무사히 수행하고 지구의 연락을 기다린다. 하지만 통신장비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지구와 연락이 닿지 않자 대원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히게 된다.
지구와 우주라는 서로 다른 공간에 머물고 있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외부와 단절된 채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부와 어떤 연락도 하지 못 한 채로.
할 일을 모두 하고 나게 되면 시간이 너무 많아진다. 규칙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할 때는 그냥 주어진 일을 하면 된다. 그렇게 하나씩 조금씩 해결하다보면 시간을 자연스레 흐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규칙적인 패턴에서 벗어나게 되면 시간에 공백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결국 거대한 시간의 여백을 상념이 채우게 된다. 끊임없이 생각이 밀려들어 공간을 메꾼다. 그곳에는 회한과 후회가, 두려움과 공포가, 그리움이 존재한다. 그렇게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여러 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머리를 점령하고 정신을 점령하게 되는 것이다. 어거스틴도 설리와 대원들도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절망 속을 유영하게 된다. 그렇기에 기적적으로 소통에 성공했을 때의 감정들이 더욱 벅차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 하는 상황에서 그저 주어진 현재를 살아가고 곁에 있는 이들과 나아간다는 줄거리가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장 이후에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 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미래가 너무 힘들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은 극한에 몰린 사람들의 아름다운 생존기라고 할 수 있겠다. 아름다운 종말이라는 말이 이제야 공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