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에서도
이현석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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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와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소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망설이게 된다. 그런 류의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사회에 대한 나의 무지와 무관심을 대면해야 하고, 그 속에 담긴 슬픔을 바라보는 것에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현석 작가님의 ‘다른 세계에서도’는 내가 무서워하는 이야기들로만 이루어진 소설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소설집에는 도덕적 딜레마가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사회 이슈들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건들이 수록되어 있고 그 주제 또한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눈을 감고 귀를 막은채로 같은 자리에 머무르고 싶지는 않았기에 일종의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결국 나는 이 이야기들을 읽어 가기 시작했다.

당연하지 않은 일들이 당연하다는 듯 일어나는 사회의 모습을 바라보며 화가 나기도 슬프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무기력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우리 사회에 단단하게 고착화 되어 있다는 사실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힘빠지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들, 섣불리 판단 내릴 수 없는 문제들을 다루는 단편들을 보며 나는 자연스레 혐오가 난무한 현재를 떠올렸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불가능한 문제들 사이에서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하기도, 때로는 쟁점과 관련 없는 말들로 서로를 비방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그런 지금을.

종국에는 이렇게 흘러가고 마는 소통 과정을 바라보고 있자면, 길을 잃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음이 불편하고 불쾌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감정들이 결국 ‘이런 상황에 휘말리고 싶지가 않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 같았다.

‘다른 세계에서도’를 완독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단편 하나를 끝내고 다음 단편으로 넘어가려면 소모된 감정을 채우는 과정이 필요했다. 너무 오바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안타까운 일들이 단순히 ‘안타까운’ 일로 그치는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 올바른 가치관을 지탱해 줄 단단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다시 이런 류의 소설을 만나게 되면 나는 또다시 겁부터 나겠지만 결국에는 그 소설을 집어들고 마음을 쏟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계속 마주하고 감정을 소모하고 슬픔을 느끼면서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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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이루는 완벽한 방법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10
바바라 오코너 지음, 이은선 옮김 / 놀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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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다닐 때 동생과 나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를 보면 손으로 얼른 낚아채 입으로 가져갔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 10개를 먹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당연히 그렇게 했다. 나란히 길을 걸을 때면 우리는 먼저 비행기를 먹기 위해 경쟁하곤 했다. 비행기 10개를 다 채운 뒤 소원이 진짜 이뤄졌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아직도 습관적으로 비행기를 보면 그냥 지나치치 못한다.

바바라 오코너의 ‘소원을 이루는 완벽한 방법’의 주인공 찰리도 우리처럼 그렇게 소원을 비는 아이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찰리는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찰리는 그 수많은 ‘방법’으로 매일매일 같은 소원을 빈다. ‘진짜 가족을 갖고 싶다’는 소원을.

부모에게 사랑받는 친구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부러움을 느끼는 찰리지만 사실 찰리의 주변에는 그녀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이들이 존재한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이 다시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찰리가 그들의 사랑을 깨닫고 마음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도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쉽게 분노하고 그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는 그녀를 이해해주는, ‘파인애플’을 외치며 그녀를 진정시켜주는 하워드같은 친구를 만나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부모가 아니어도 그에 못지 않은 사랑으로 찰리를 보듬어주는 이모와 이모부,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어도 가족같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워드네 가족을 통해 사랑에는 경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친구사이에서의 사랑이라는 말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사랑의 종류를 구분짓는 것보다는 사랑 ‘그 자체’가 주는 따뜻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 마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처투성이인 찰리의 여린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독자의 마음 또한 물렁거리게 만든다.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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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갇히다 - 책과 서점에 관한 SF 앤솔러지
김성일 외 지음 / 구픽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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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세상은 종이책이 없는 세상이다. 나는 오디오북이나, 전자책이 가지고 있는 이점들을 인정하기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것들이 종이책의 감성을 따라가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종이가 가지고 있는 그 연약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 손을 가득 채우는 부피와 무게, 변형된 나무의 냄새가 주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편의성에 취해 전자책으로, 오디오북으로 독서를 하다가도 다시 종이책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 예상한다. 우리는 책이라는 물질 자체의 매력을, 특성을, 약간의 불편함 마저도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책의 미래는 여전히 종이책 그 자체이다. 하지만 여전히 기술은 발전하고, 많은 것들이 대체되거나 사라지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에 책의 모습 또한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그 모양이, 방식이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어 책의 머나먼 미래를 떠올리기엔 역부족이지만 ‘책에 갇히다’의 여덟 작가의 이야기들이 상상의 영역을 확장시켜준 덕분에 나는 책의 새로운 모습들을 생생하게 경험해볼 수 있었다.


 책과 서점이라는 하나의 소재로 그렇게나 매력적이고 참신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공상과학이라는 하나의 장르 안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들은 하나하나가 개성있고 느낌있었다. 이야기 속에서 그려지는 세계는 디스토피아의 경계에 놓여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책이, 글이 만들어내는 힘은 우리를 그런 세상의 경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것 같았다.


 책이 책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들어갔다 나와보니, 책이라는 물체가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책은 그냥 지금처럼 그대로 존재했으면 좋겠다. 언제나 내 방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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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아르테 미스터리 19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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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포영화나 드라마, 이야기를 보고 나면 한동안 후유증이 남아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거나 화장실을 혼자 가는 것도 무서워하는 어린이였다. 그런데도 나는 항상 그런 공포물을 찾아 기웃거렸는데 알량한 객기와 궁금한 걸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공포 마니아(?)라고 할 수 있는 나는 아직도 공포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렇게 또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작품이 바로 아시자와 요의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이다.

일본의 공포물은 물론 무섭기도 하지만 다 보고 나면 왠지모를 찝찝함이 남는다. 나쁜 의미의 찝찝함이 아니라 끝나도 끝난 게 아닌 것 같다는 섬짓한 느낌에서 오는 찝찝함. 그래서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의 느낌을 줄 지 기대가 되었다.

여러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소설은 미스터리 작가인 '나'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각각의 이야기는 '나'와 관련된 인물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독자적인 것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소설은 영화와는 달리 시각적, 청각적인 자극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독자의 공포심을 자극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상상을 자극하기 때문에 더 무서울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소설보다는 영화가 더 공포스럽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여느 영화 못지 않게 무서웠다. 어떻게 보면 흔하다고 할 수 있는 소재가 잘 연결되어 있고 사건 또한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이야기들 때문에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일본 스타일의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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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곳에서 안전가옥 오리지널 7
이경희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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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시간을 뒤로 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쯤은 할 것이다.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수도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생각했던 때는 동생과 해외여행을 갔을 때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아침 비행기를 타고 포르투갈에서 파리로 가는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방을 정리하고 여유롭게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떠날 채비를 한 후에 열쇠를 반납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간 우리를 맞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는데 그 때가 아주 이른 아침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쇠 상자에 열쇠를 두고 기차를 타기 위해 문 밖을 나서는 순간 나는 내 손에 캐리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바보같게도 열쇠를 두고 몸만 빠져나온 것이다. 열쇠도 없고 벨을 눌러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아 문 앞에 서서 1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겨우겨우 가방을 찾았을 때는 이미 비행기는 떠난 후였다. 2년 전의 일인데도 나는 아직도 문득 그 때의 경험이 떠오른다. 지금은 우스운 해프닝 정도로 여길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끊임없이 했었다. 나를 믿고 따라오던 동생에게 미안했고 속상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이경희 작가의 '그날, 그곳에서'는 나처럼 시간을 되돌려 과거를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리고 실제로 그곳에서는 시간을 여행하는 일이 가능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계속해서 과거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들의 사연에 비하면 나의 사연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해프닝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으며 첫 장을 펼친 순간 나는 쉬지않고 마지막 장까지 모두 읽어버리고 말았다. 급박하게 몰아치는 이야기는 계속 책장을 넘기게 만들었고 결말에 도달할 때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정도로 흡입력 있고 잘 짜여진 재밌는 소설이었다.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만드는 과학적인 이론들에 대해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소설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오히려 이론들에 대해 쉽게 쓰여진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비극을 없던 일로 만드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비극이 다른 비극을 낳고, 또 다른 비극을 낳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키고 싶은 간절함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슬픈 여행을 계속해서 응원하게 되는 것은 그들의 슬픔과 아픔이 계속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다. 실존하는 인물들은 아니지만 그들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사람들인 것 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절망 속을 유유히 유영하는 그들의 슬픈 마음 한 조각을 나눠 가지게 된 것 같았다.

여러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여러 번 이 책을 다시 읽게 될 것 같다.


어떤 슬픔은 시간의 바깥에 있습니다.결코 지워지지 않고, 영원히 기억 속에 남지요.

40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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