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이경 지음 / 래빗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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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각오는 했지만 역시 속이 조금 쓰렸다. 황새영아 송영 이용료는 결코 저렴하다고 할 수 없다. 얼핏 계산해도 서울과 남해를 오가는 KTX 편도 요금의 여섯 배 정도 되는 가격이다.’ (p.78-79)

아이를 낳아 기르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이경 작가의 SF 단편집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를 읽어보았습니다. 여섯 편의 단편 모두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전혀 추측할 수 없어서 호기심을 잔뜩 품고 펼쳐보았는데요, 단언컨대 SF 장르가 낯선 분들도 정말 친숙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예요!

책 속에는 곧 현실이 될 것만 같은 과학 기술과 생활 환경이 가득합니다. 아기를 돌보는 사람이 외롭지 않게 말동무가 되어주는(+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의 모습!) 홀로그램, 인공지능 로봇이 아기를 편안하게 이송해주는 황새영어송영 서비스, 법정 입회인 두 명이 있으면 신청할 수 있는 존엄사처럼요. 그래서인지 더 와닿았어요.

독특한 설정의 단편들도 있었는데요. 로봇이 무려 자연발생(!)해서 1950년대에 이미 로봇과 공존하는 세상에서는 로봇도 세대에 따라 가치관이 확연히 다른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신들이 인공지능인 척하며 챗GPT에 답을 달아주는 세상, 이전 직업에서 은퇴해서 인생 2막을 여는 로봇의 이야기..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저는 인공지능 기술로 돌봄 노동에 큰 도움을 받는 단편들이 정말 좋았습니다. 너무나 현실적이게도 SF속에서도 돌봄은 여성이 주로 하고 있는데요, 이경 작가는 그들을 돕는 인공지능 로봇들을 도우미, 친구, 때로는 가족이나 구세주처럼 그려내요. 인공지능이 완벽하게 사람같지는 않지만 그래서인지 더 완벽하고 때로는 어설픈 모습에 정이 가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이제 옥련이 죽기 위해선 나라의 인가가 필요했다.' (p.117)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던져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단편 하나씩 마칠 때마다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제가 SF를 좋아하는 이유는 ‘새로 열릴(지도 모르는) 시대의 인류와 인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거예요. 미래를 생각하며 현재를 더욱 잘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SF, 우리 함께 읽어요!

“간병 로봇의 인공 인격이란 게 인간을 인간답게 돌보기 위해 인간의 일과 행동을 다 모방해서 된 건데 구공일 씨가 인간이 아님 뭐예요?” (p. 135)

•래빗홀클럽 활동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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