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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노동 - 가정, 병원, 시설, 임종의 침상 곁에서, 돌봄과 관계와 몸의 이야기
매들린 번팅 지음, 김승진 옮김 / 반비 / 2022년 10월
평점 :
이 책을 개인적으로 읽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다. 내 삶에 뭔가 주체할 수 없는 무게감을 마주한 순간이 있어서였다.
얼마 전, 치매 초기셨던 할머니께서 쓰러지셨고 중환자실에서 한 달을 지내시다 결국 요양병원으로 모셨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은 적잖이 힘들어하셨고, 돌봄의 주체로서 맏며느리 어머니는 스트레스를 장녀인 내게 하소연하는 일이 잦아졌다. 물론, 공감해주고 들어줄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단순히 '청자'의 입장이 아니라 이젠 연로해가는 부모님의 돌봄에 있어서 책임과 수행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를 존재하게 한 존재를 위한 돌봄, 사랑의 노동 선상에 나는 이미 서 있었던 것이다.
매들린 번팅의 '사랑의 노동'은 가정, 병원, 시설, 임종의 순간까지 돌봄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 본 긴 여정이다. 영국의 NHS 시스템 속 돌봄의 현장을 들여다 보며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의 현실도 같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내가 존재하기까지 나를 돌 본 존재들의 희노애락과 나 역시 내가 돌 보게 될 존재들이 있음을 마주하게 된다. 돌봄, 공감, 친절, 궁휼, 동정, 의존, 고통 단어의 어원과 함께 이야기 속의 주제를 풀어주는 저자의 노련함과 단단함도 느껴졌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상담사, 의사, 간호사, 부모를 돌보는 자녀... 등장 인물의 이야기는 다름 아닌 나의 이야기라 더 아프고 때론 분노하며 더 감동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지리멸렬하게 반복되는 일상이 돌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일상의 하루 하루가 생명을 자라게 하고, 생명을 유지시켜주며, 생명을 갈무리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매들린 번팅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생명과 그 생명을 지탱해주는 돌봄이다. 우리는 돌봄의 현장에서 각자의 답을 찾기 위해 오늘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