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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공간을 찾아서 - 우리가 잊지 않고 꿈꾸는 것에 대하여
안정희 지음 / 이야기나무 / 2021년 6월
평점 :
어릴 적 부터 박물관, 미술관 가는 것이 좋았다. 왜 좋은 건지 몰랐지만, 그 곳에 있으면 상상하게 되고, 그 상상으로 이어지는 세계가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이런 내게 조금 더 빨리 만나졌으면 좋았을 것 같지만, 지금 만나서 더 고마운 책이 안정희 작가님의 '기억 공간을 찾아서'다. 그녀의 담담한 글도 좋았지만, 책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 그녀의 통찰력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정리되지 않았던 기록과 기억에 관한 생각이 조금씩 가닥을 잡는 것 같았다.
#독일의 기억 공간
브레멘 항구의 이민 박물관에서 시작해서 뮌헨의 이미륵 묘, 마인츠의 구텐베르크 박물관까지.
특히 '떠난 사람들의 집'으로 표현한 이민 박물관은 책으로 만났지만 생생하게 그들의 여정을 함께 하는 것 같았다.
우리 모두 지구별 여행자, 모두 지구라는 하나의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더 나은 삶을 꿈꾸기에.
#일본의 기억 공간
오키나와의 슈리성, 아리랑 위령탑, 히메유리 평화기념자료관. 아무말도 하지 않는 유물, 유적, 기록이지만 결코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될 과제와도 같은 기억 공간. '전쟁박물관에는 주어가 없다'라는 파트가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이야기의 '주어'는 세상의 축이 무엇인가, 혹은 세상을 움직이는 주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보여주며 인과관계를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너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는 '공감'의 실체이기도 하다. p.129
#한국의 기억 공간
진안의 사진문화관, 서울 종로 윤동주 문학관, 제주 서귀포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인천 강화도 심도직물 굴뚝... 대한민국에 30년 넘는 시간을 살았는데도 한 곳도 찾은 적이 없다. 기회가 있었지만 스친 공간도 있지만, 그 공간의 의미조차 몰랐던... 수몰지구로 들어 본 적 있던 진안의 기록, 시인의 삶 넘어의 기록,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제주의 풍광, 기록되지 않은 노동에 대한 이야기.
기록이 자꾸 권력자의 이야기로 남는 것 같다는 작가의 말이 가슴 저릿하게 남는다. 기념되지 않은 노동은 결국 시간과의 싸움에서 소멸된다는 것.
#그리고... 남겨진 이야기
소설은 소소한 거짓, 역사는 거대한 거짓? 도서관에서 8번과 9번 사이의 간극. 저마다의 기억이 진실이 될 때까지, 소설은 언제나 역사 앞에 있다는 작가의 끝맺음이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인 셈이다. 우리는 기록여행자로서 개개인의 삶 속에서, 공동체의 삶 속에서 조금씩 성숙하며 연대하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