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없는 살인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쌓아놓고는 며칠째 읽고 있다. 11월의 백은의 잭과 새벽거리에서를 마지막으로 틈틈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을 읽은 것을 빼고는 별다른 독서라곤 없었는데 확실히 연말이 되니 시간도 생겨 그동안 못읽은 책을 마음껏 탐닉할 수 있었다. 처음 시작은 류현진 투수의 소개글이 인상적인 <마구>였고, <교통경찰의 밤>과 <성녀의 구제>를 거쳐 <범인없는 살인의 밤>을 읽고, <환야>와 <회랑정살인사건>, <수상한 사람들>을 읽고 지금은 잠시 히가시노 게이고를 벗어나 돌아온 셜록홈즈를 맛보려고 하고 있다. 약 10일정도의 기간동안 7권, 아니 환야가 2권인걸 가만하면 8권을 통해 히가시노 게이고를 만났지만 그 느낌은 하나하나가 다른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유가와가 등장하는 책도 읽었는가 하면, 백야행이 떠오르기도 하고, 정말 과거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소설도 읽기도 했다. 열흘동안 읽은 책 하나하나가 감회가 새로웠지만 <범인없는 살인의 밤>은 정말 가볍게 읽기에 좋은 책인것 같으면서도, 그 근본에 깔린 인간의 모습에 더디게 읽히는 책이기도 했다.

 

단편집이어서 그런가 <범인없는 살인의 밤>의 표지를 보았을 때엔 이 책이 나왔을 당시인 2009년에 읽지 않은 책인줄로만 알았다. 그 때는 도서관에서도 책을 많이 빌려보던 때라 정말 인상적인 책을 제외하고는 기억에 남지 않는 책도 수두룩하다보니 책자체가 집에 남아있지 않으면 솔직히 읽은 책인지 헷갈리는 책들도 많다보니 그럴수도 있긴하지만,,살인이라는 것이 단순한 손짓, 말한마디로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작은 고의에 관한 이야기>와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살한 양궁선수의 죽음을 파헤친 <굿바이 코치>를 읽으며 분명 어디선가 한번 읽은 이야긴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5개의 단편을 읽을 때는 새로운 이야기를 읽은 느낌이 든걸 보면 2009년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았나 보다.

 

하지만 오랜만에 시간을 들여 읽은 <범인없는 살인의 밤>은 이야기 하나하나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작은 고의가 만나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은 고의에 관한 이야기>와 자기에겐 아무런 생각없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겐 커다란 상처가 되어 죽음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하얀 흉기>, 어른의 탐욕에 의해 한 소년의 일그러진 삶을 그린 <어둠 속의 두사람>, 호의에서 시작해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드라마속 주인공과는 달리 누군가의 호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비극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춤추는 아이>, 사랑하지만 과거의 트라우마에 의해 벗어날 수 없었던 <끝없는 밤>. 그리고 잘못된 위로는 오히려 필요악일 수 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굿바이, 코치>와 온가족이 합심하여 아들의 인생이 꼬이지 않도록 한 여자를 철저히 사라지게 하려는 이야기 속에 숨겨진 진실에 대한 <범인없는 살인의 밤>까지 7가지 이야기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느낌으로 진행되면서도 결국은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숨겨진 범인을 천천히 밝혀내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범인없는 살인의 밤>이라는 한 권의 책은 자살의 형식일지라도 누군가의 죽음에는 다른 누군가가 개입되어 있으며, 끝까지 다른 사람들은 아니 자기 자신조차도 누군가의 죽음의 원인이 된 자를 알지 못해 범인이 없는 살인이 될지라도 정말 범인이 없을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 단편들의 묶음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너무나도 씁쓸한 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특히나 한 소년이 밤에 춤을 추는 소녀에 반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려고 시작한 일로 인해 벌어진 사건의 모습을 보며 인간의 호의가 생각지도 못한 결말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진실을 보니 남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 아니 자신의 좋은 마음을 표현하는 것조차 끔찍한 결말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낄 뿐이다..그래도 읽다 보니 <끝없는 밤>,<하얀 흉기>의 형사의 모습은 어쩐지 가가형사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 미소를 짓게도 되는 책이었다. 이름도, 같은 사람도 아니지만 향기와 감으로 범인을 예상하고 증거를 수집해나가는 모습이나 범인을 몰아부치기보단 옆에서 보고있다는 느낌때문인지 비슷한 느낌이 나기에 혹시 가가형사의 시초가 아닌가하는 생각에 흐뭇함도 느껴졌다..

단편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건만 읽은 뒤에는 묵직함이 남는, 그러면서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기에 2년전 스치듯 읽은 것이 전부지만 그나마도 드문드문 기억에 남아있던 것 같다.. 아마 이번엔 내 소유의 책으로 남아 있는데다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몰입해서, 그러면서도 담담히 읽어나간 덕에 2년이 지난 후에도 책을 살짝 훑어보면 모든 이야기가 생생히 기억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인가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지는 독서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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