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시월의 밤
로저 젤라즈니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과연 이 책을 처음부터 읽긴한건지, 과연 이 이야기가 끝난건지, 내가 중간에 빼먹은건 아닌지.. 분명 처음부터 끝까지, 쉬엄쉬엄 읽긴 했지만 그래도 삼일에 걸쳐 틈틈히 다 읽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어디에선가 끈을 놓쳐버린 듯 뭔가 아리송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스너프와 옆집 고양이 그레이모크, 그리고 다람쥐와 뱀, 부엉이를 키우는 주인들이 어떤 게임에 참여했고, 누군가는 죽고, 그걸 덮으려는 사람과 파헤치려는 사람, 그리고 비밀투성이인 사람들이 한 가지 결말을 위해 끊임없이 찾고, 해결하고, 숨기려고 하는 이야기 속에 사소한 웃음도 혐오스러움과 괴기스러움 모두 어우러져 계속해서 읽을 수 밖에 없던 책이었지만 분명 난 어디에선가 이야기의 끈을 놓친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클라이막스에 도달해 멋지게 끝나는 이야기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수가 없었다. 처음 스너프와 잭이 어둠이 밀려온 후, 재료를 찾기 위해 돌아다닌다는 이야기에 아무런 의심도 없이 찰스 디킨스의 <교회지기를 홀린 고블린 이야기>를 떠올리며 당연히 묘지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묘지에서 비밀스런 재료를 찾듯, 고블린처럼 어떤 악마를 만나거나 유령을 만나거나, 아무튼 기괴한 현상에 말려들 것이라고만 생각을 하며, 잭과 스너프가 집에 가둬둔 정체모를 것들에 대해서는 해리포터 속 자신이 무서워하는 상상의 것으로 변하던 서랍안의 생물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며 비슷한 이야기일 것이려니 생각을 했었던게 실수였다.. 

아무리 속으로 잠깐 생각했었더라도 결국은 책을 읽는 내내 거기에 얽매여서는 이 이야기에만 온전히 빠져들지 못하다보니, 옮긴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백작이 ooo이자나,,,라고 할 때까지 생각도 못했었다.. 그러고보니.. 그랬다.. 너무나도 뻔하고, 알기쉽게 특징을 그렇게나 많이 보여주고 있음에도, 난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미리 "젤라즈니의 장기인 아름다운 문장과 정교한 플롯에다 온갖 상상계의 스타들, 그리고 독특한 캐릭터 설정"라는 소개글을 읽거나 누군가의 리뷰를 읽은 뒤 책을 읽었더라면 처음부터 스너프니 잭이니 질이니 백작이니 하는 등장인물들이 어떤 상상계의 스타이려나 생각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을뿐만 아니라 옮긴이의 글을 읽기전에 등장인물이 누군지 알아채곤 뿌듯했을텐데.. 이렇게도 뻔한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는데에 내가 이렇게나 책을 대충읽었나 싶어 큰 상처를 받았다.. 

그래도 백작의 모습이 수상하다긴 하지만, 목사라면서 점점 더 사탄스러워지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목사와 그 집에 감금된 소녀, 그리고 그레이모크가 염탐짓을 통해 알아내던 사실과 스너프가 숨긴 시체에 대해서만 집중하다보니 그랬다고 위안을 삼을수도 있었지만 그로인해 중간중간 실마리를 너무나도 많이 놓쳐버렸으니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아리송한 기분이 들 수 밖에 없는 거였다.. 진작에 꼼꼼히 문장하나하나를 새기며 정독할 걸 싶었지만 그래도 벌써 통독을 해버렸으니 이 책의 느낌은 끝까지 아리송한 이야기라고 남을 것 같다...

그래도 신기한 건,.. 실마리를 그렇게나 많이 놓쳤음에도 책을 읽는 속도가 더뎌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리송한 기분에 다시 처음부터 책을 읽긴 했지만, 그전에도 이야기는 물흐르듯 흘러, 결말을 향해 순식간에 도달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더더욱 중간에 놓친 실마리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짠"하고 끝나버렸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었더라면 책소개의 말처럼 "'고딕소설, 탐정소설, 판타지의 절묘한 배합"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을텐데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술술흘러가 모든 비밀들이 집결하여 10월의 마지막 날 사건이 벌어지고, 잠잠해지는 모습에 나 역시 그런 분위기에 휩싸였다는 점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소소한 점을 놓친 것에 대한 아쉬운 점을 빼더라도 충분히 재밌게 읽은, 쉬운 듯 쉽지 않은 뭔가 아리송하면서도 알것같은 그런 묘한 이야기에 정말 오랜만에 뿌듯함을 느끼는 책이었다.. 이 여세를 이어 다음번엔 로저 젤라즈니의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나 <앰버연대기>에 도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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