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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탑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평점 :
드디어 방학을 했다!! 방학이라고 해서 학교를 안가는 것도 아니고, 학기중보다 공부할 꺼 없는 것도 아니다보니 정말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변명이라면 변명일 수도 있지만.. 입학을 앞두고 시간이 남아돌던 작년처럼 무작정 책을 읽는게 소원이면서도 정말 책을 가까이 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방학이 되자마자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명, 아니 재미있을 꺼라고 맹신하는 작가 중의 한명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카산드라의 거울"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진도가 안나간다.. 두권이어서 그런 것도 같고, 읽으면서 점점 냉소적이어져서 그런 것도 같고.. 그래서 그냥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빠져들게 되는 추리소설을 읽어버리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긴다이치 쿄스케시리즈의 요코미조 세이시작가의 신작이 나온터라 아무 망설임없이 읽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읽은 요코미조 세이시의 책은 몇권 안된다.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팔묘촌>, <악마의 공놀이 노래>, <옥문도>, <이누가미 일족> 정도니 딱 5권을 읽었을 뿐이다. 하지만 단 5권밖에 되지 않지만 실망도 많이 했다. 이전에 쓴 리뷰를 보니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를 읽을 때에는 홈즈나 푸아로와 같이 매력있지 못한 쿄스케의 모습에 실망을 했고,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의 모습에 실망도 했고, <팔묘촌>의 경우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이미 본 듯한 내용과 어쩐지 적극적이지 못한 쿄스케에 다시 한번 실망을 했으니 이미 오래전 난 긴다이치 쿄스케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악마의 공놀이 노래>, <옥문도>에서도 계속해서 탐정역을 하는 긴다이치 쿄스케에 불만을 갖고 있었던 걸보면, 딱히 난 긴다이치 쿄스케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요번에도 어째서인지 난 긴다이치 쿄스케의 시리즈를 좋아한다 생각하고 책을 산 걸 보면.. 정말 순식간에 책 내용을 잊었나보다..
그리고 내가 더이상 김전일의 할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긴다이치 쿄스케를 좋아하지 않을 꺼라는게 이번 책으로 확실해졌다. 이번 <삼수탑> 역시 긴다이치 쿄스케의 활약이라곤 느껴지지도 않았고, 이전의 시리즈가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추리소설의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추리소설이란 느낌보단 풍속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어 더욱 실망을 하게 되었다. 요코미조 세이시가 과도기에 썼던 이야기들 중 최고의 작품이라고 일컫어지고 있는 것이 <삼수탑>이고,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었다고 하는 소설이라는 데도 이 책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니어서인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여성 1인칭 시점에서 씌어진게 특이점이라면 특이점이고, 그 여자가 사건을 그저 관찰하는게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 사건에 깊숙히 관여하여 도망을 다니는 점이나 머리가 세 개 들어있는 삼수탑이라 불리는 탑과 그에 얽힌 사연으로는 충분히 섬뜩하면서도 뭔가 사건을 풀이해나가는 재미가 있을 것같았다.. <이누가미 일족>에서도 유산과 관련하여 더 많은 유산을 위해 친족들이 죽어나가던 것처럼 <삼수탑>에서도 오토네와 관련하여 겐조라는 친척의 유산의 상속과 관련하여 그 친척들이 죽어나가니 어쩐지 전형적인 돈과 관련한 추리소설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점은 없어도, 그만큼 익숙한 이야기다보니 이번엔 어떤 트릭으로 사건을 꾸미나 기대했었다..
하지만 범인이 범인인 만큼 왠지 트릭이 특별할 것도 없었다. 다만 오토네와 함께 상속을 받는 친척들의 추악함을 보여주기 위해 스트립쇼극장같은 곳에 가질 않나, 봉봉클럽? 아무튼 그런 이름의 싸구려 윤락가같은 곳을 가질 않나, 그리고 그런 추악한 사람들의 곁에서 상속을 받는 사람에게 들러붙기 위해 상속녀들의 주변에 있는 남자들도 하나같이 여자를 꼬시기 위해, 여자를 지배하기위해 옆에서 그녀들을 조종하는 정도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질안나.. 솔직히 살인사건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싸구려 소설이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니 제목이 <삼수탑>이면 삼수탑이 이야기 전체의 구심점이 되어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고, 사건이 해결되는 곳이어야 하지 않나? 분명 내용 전체에 있어 삼수탑은 오토네가 반드시 찾아야 하는 곳이고, 그곳에 사건의 실마리가 있음은 이야기 시작에서부터 강조하고 있었는데 막상 삼수탑은 이미 알려진 것을 확인하는 정도에 불과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누군가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대단한!! 역할을 해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삼수탑의 존재는 미미했다. 그리고 긴다이치 쿄스케의 모습도..
언제나 탐정은 사건이 발생한 뒤, 범인을 밝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건 알고 있다.. 홈즈처럼 사건을 의뢰받아 발생될 것이라고 여겨지는 사건을 막을 때도 있지만, 보통의 추리소설에선 어느 누군가가 죽어야지만 탐정이 등장하다보니 약간은 뒷북을 치듯 범인의 이야기를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전력질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긴다이치 쿄스케시리즈에서 계속해서 느끼는 건, 탐정이라는 직업의 한계에 의해 범인의 뒤를 쫓아 마지막에서야 겨우겨우 사건을 해결하는 다른 탐정들과는 달리 쿄스케는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 것 같다.. 특히나 이번 이야기에서는 더더욱 그의 역할이 적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년탐정 김전일의 "김전일"만 해도 범인의 마음을 돌리려고도 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과는 달리 그의 할아버지란 긴다이치 쿄스케는 "이미 거의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좀 더 기다려서 사건이 끝나기만을 기다린 거야"라는 식의 모습이니..
내가 긴다이치 쿄스케를 싫어하는 것과 더불어 이런 풍속소설같은 느낌의 이야기를 싫어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디스트적이고 마조히스트적인 이야기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모습과 더불어 전혀 유쾌하지 않은 모습이었기에 이야기에 빠져들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읽은 것과는 상반되게 딱히 좋은 인상의 책은 아니었다. 솔직히 이 책을 새벽 1시 반쯤 읽기 시작해서 4시쯤 다읽었으니 4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임에도 엄청 빠르게 읽을 수 있는 그런 흡입력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내용 하나하나에 꼬투리를 잡고 싶은 심정이다.
이부분은 이래서 어떻고, 저부분은 이래서 어떻다고 마구 꼬투리를 잡아주어야, 이 책을 읽음으로써 느낀 허무함을 조금은 풀 수 있지 않을까했다.. 예를 들면 오토네가 아가씨로 자랐고, 숙녀로 자라서 의문의 남자에게 몸을 빼앗긴 것에 대해 누군가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 하지만, 솔직히 그게 자신이 살인자로 오해받는 것보다 더욱 수치스러울까 싶다.. 분명 지금과는 다른 시대라곤 하지만 그래도 말이다.. 그리고, 한 사람의 남자가 그렇게도 많은 역할을 수행하며 그걸 다른 사람이 모를까 싶었다.. 아무리 변장을 한다고 해도, 오토네의 말처럼 변장실력이 특출난다고 해도 약간은 수상쩍은 사람을 매일같이 보면서 의심하지 않는 비밀숙소의 고용인들도 그렇고, 자기네 가게에 자주온다고 하면서도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파악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도 그랬다..
그리고.. 갑자기 현실 속의 이야기 속에 비현실적인 모습이 나오는 건 또 뭐람.. 이야기 전체에서 누군가 트릭으로 초현실적인 상황을 만들어낸거라면 그 트릭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그렇구나라는 생각을 할 텐데 이건 뭐 그렇지도 않고, 조금은 뜬금없는 설정이지 않은가 싶었다..
진짜.. 긴다이치 쿄스케도 그렇고 전체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이제껏 읽은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쿄스케시리즈와는 조금 다른 많이 다른 풍속느낌의 소설일지라도 새로움으로 받아들여도 되지만 오랜만에 읽은 책이어서인지 예전과는 다르게 그냥 내가 싫어하는 점이 유난히도 많이 느껴진다..
예전처럼 무분별하게 마구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일주일에 3~4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아마 이 책도 그리 나쁘지 않은 책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을텐데..지금의 느낌으로는 조금 많이 안타깝다고 밖에 여겨지지 않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