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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팥쥐전
조선희 지음, 아이완 그림 / 노블마인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정말이지 이 책을 밤에 읽은 건 실수였다. 이야기들이 잠을 못 잘정도로 소름이 끼치지는 않았지만, 전래동화의 이야기를 현재로 옮겨 놓아서인지 자꾸 상상이 되었다. 특히 <죽이거나 살리거나>의 경우, 우리집 주변의 누군가가 자신의 아이 혹은 손자옷이라며 건네는 일은 없다고 보는 것이 좋을 정도의 확률이다보니 그 옷에 관한 이야기가 소름끼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옷을 입고 죽었던 손자가 아파트에서 밤에 자살을 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안그래도 앞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소름이 끼친 상황에서 아파트에서 자살을 한 아이의 이야기를 보니 갑자기 내 방의 창밖이 무서워졌다. 그래서 거실로 나왔더니 방보다는 더욱 큰 창문들에 밖이 어찌나 잘보이던지, 그리고 방과 거실, 주방에는 모두 창문이 있다보니 피할 곳은 화장실밖에 없는데 화장실 역시 괴담의 주요 발생장소다 보니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결코 내리지 않던 블라인드를 바닥까지 내려놓고는 금방 잠이 들기도 섬뜩해 결국은 책을 다 읽고야 말았다. 어차피 <죽이거나 살리거나> 뒤에는 <지팡이>밖에는 없었지만, 그래도 야심한 밤에 이 책을 전부 읽고 만 내가 자랑스러웠다.
다 읽고나서도 창문쪽은 쳐다보지도 못하게 만들었던 이 책은 6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있었다. 팥쥐전을 모티브로 한 <서리, 박지>와 여우누이전을 떠오르게 하던 <자개함>, 그리고 우렁각시이야기인 <시시>와 개나리꽃을 모티브로한 <개나리꽃>,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인 <죽이거나 살리거나>, 그리고 십년간 지팡이를 휘두른 사람을 변형한 <지팡이>로, 여우누이전과 개나리꽃을 빼곤 너무나도 익숙한 이야기들이었지만 전래동화들을 모티브로 하여 변형시킨 이야기들에서 그 이야기들의 흔적을 찾기 어려운 것도 있었다.
<서리,박지>의 경우 홀아비가 딸을 데리고 딸을 가진 홀어미와 결혼한다는 것과, 콩쥐 즉 홀아비의 딸은 원래 이쁘고, 홀어미가 데리고 온 팥쥐는 못생겼다는 것은 똑같았지만 계모가 콩주쥐를 엄청 미워하며 구박하면서 온갖일을 다 시키던 것과는 달리 박지의 엄마는 박지보단 서리를 이뻐했다는 점에서 크게 차이가 나는 듯 했다. 콩쥐가 원님인가 원님의 아들을 만나 역경과 시련이 멈춘것과는 달리 죽은 남자친구를 어떻게든 영혼결혼식을 시키지 않으려하면서 서리의 시련은 시작되었고, 점점 낌새가 이상하더니 결국 박지의 엄마는 박지의 편이며, 정말로 무서운 방법을 통해 서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보다보니 무섭기보단 화가 났었다. 어릴 적 읽은 전래동화에서는 알지 못했던 "팥쥐를 젓갈로 담아 팥쥐어미에게 준 일"을 보며 조금은 소름이 끼쳤지만 역시 착한 사람에게 복이 와야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생각과는 전혀 반대인 결과였다.
그리고 <자개함>의 경우엔 조금 황당한 느낌이었달까? 어린 마음에 여우누이전 속의 가족을 잡아먹는 여우누이동생의 모습에 소름끼치고, 그런 여우누이를 물리친 오빠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더라면, 이 이야기에서는 그저 늙지 않는 엄마가 그리고 그 엄마가 아무렇지도 않다가 갑자기 초인적인 능력을 보이는 모습에 황당함을 느꼈다. 처음부터 늙지 않는 것 외에 다른 점을 인식시켜주었더라면 좋았을 것같았다.
세번째 이야기인 <시시>의 경우엔 우렁각시와는 다른, <죽이거나 살리거나>에서는 선녀와 나무꾼이야기와는 달리 섬뜩함이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아무리 어릴 적 읽은 이야기를 되새겨봐도 우렁각시는 참한 이미지에, 원님에 눈에 들어 남편을 조금 힘들게는 하였지만 결국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이야기이고, 선녀와 나무꾼 역시 나무꾼에 의해 옷을 뺏긴 선녀가 여러 아이를 낳고 살았고, 결국 옷을 되찾아 하늘로 가지만 선녀를 그리워하던 아이와 나무꾼 역시 하늘나라에서 같이 살게된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와 달리 "시시"는 조금은 무서운 듯한 신비로운 존재로 다른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내가 그렇게 무서워하던 이야기인 <죽이거나 살리거나>에서 옷은 아내를 못 떠나게 하는 선녀의 옷이 아니라 죽은 아이가 입고 있었고 불에 타지도 않는 끔찍한 옷이었다.
어른들이 읽는 그림동화에서 내가 알고 있던 백설공주이야기가 아닌 무서운 백설공주를 읽었을 때에는 그래도 전체적인 줄거리는 똑같고 자세한 사항이 달랐던 건데, 이 책의 전래동화들은 그저 중요한 소재인 옷 또는 시시와 같이 비슷한 사람만이 등장할 뿐 <모던팥쥐전>이란 제목답게 새로운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비슷한 것은 조금밖에 없는 이야기들에 삽화가 더해져 더더욱 상상하게 만들고, 시대도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모습과 똑같다보니 무서운 그림동화와는 차원이 다른 무서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