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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의 연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새벽녘 졸리운 눈을 비벼가며 열심히 읽다 잠이 들었나보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도무지 결말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스미레는 그냥 사라진 채로, 나는 여자친구(솔직히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의 어머니이고 불륜이다 보니 여자친구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달리 부를 말이 없다..)와 헤어지고, 뮤와는 다시는 못만나는 채로 끝이 났구나라고 어림짐작을 하다, 다시 한번 결말만을 읽기 시작했다..
이런.. 딱 4~5페이지를 읽지 못하고 잠이 들어버렸던 것이다. 스미레가 갑자기 사라진 뒤, 뮤의 연락이 없다고 쓰여진 부분만 읽고는 다시는 못만났다고 생각을 했는데, 우연히 나는 백발의 뮤를 만난다. 그리고 스미레도 완전히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예전처럼 나에게 뜬금없이 전화를 함으로써 다시 이 세계로 돌아와있었다.
이전의 하루키 책 속의 주인공들의 경우, 하나의 사건을 경험한 뒤에는 다시는 못만난다는 식의 언급이 있어 이 책의 결말도 내 마음대로 꾸며내버리곤 잠이 들었나 보다.. <양을 쫓는 모험>에서 나와 함께 쥐를 찾던 그녀(키키)를 잃어버렸고,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서 시마모토가 하지메를 두고 사라져버려 하지메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상실의 시대>에서 와타나베가 나오코를 잃었듯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 나 역시 스미레를 잃고, 어딘가에 나의 반쪽을 잃어버린 채 지내며 크나큰 상실감을 느끼며 살게되는 것이 아닌, 누구보다 나에게 소중했던 스미레를 다시 찾아 너무나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성욕도 느끼지 않고, 사랑을 느끼지도 않는 스미레였지만 뮤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런 스미레를 바라봐야만 했던 나는 조금은 엇갈린 사랑을 하는 것같아 안쓰러웠지만 결국엔 나에게 돌아오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다만 스미레는 과연 저쪽에서 무엇을 하다 왔을지 의문이 남는다.. 저쪽을 다녀온 사람은 스미레 뿐만 아니라 <해변의 카프카>의 카프카군도,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나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너무나도 친절하게 저쪽에서의 생활에 대해 들려주었다. 카프카군이 아직은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관장님을 만나고, 그 세계를 지키는 군인들을 만나고, 그곳에서 지낸 며칠간의 이야기를 남김없이 들려준 반면 스미레는 그저 다녀왔을 뿐 그 곳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과연 그녀는 성욕과 검은 머리와 삶에 대한 의욕을 가진 사라진 반쪽의 뮤를 만나고 왔을까? 그리고 그녀 역시 뭔가 그녀의 반쪽을 잃어버린 채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온 것일까 아니면 온전히 그녀 자신으로 돌아온 것일까? 여러 의문이 남지만 스미레는 그저 돌아온다는 말만 남겼을 뿐이다.. 아니 내가 여백에 씌여진 이야기를 아직은 읽어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문장과 문장사이의 여백에서 하루키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