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박종대 옮김 / 이레 / 2010년 1월
구판절판


나는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페터 그라프로 산다고 해서 안 될 이유가 있을까? 바바라의 성을 따라 페터 빈딩거라고 부른다고 해서 안 될 이유가 있을까? 없었다. 나는 다만 내 이름이 좋았다. 그것은 조부모와 나를 잇는 소중한 끈이었다. 반면에 아버지와 나를 잇는 끈은 한층 가늘고 덜 중요했다. 하지만 그 끈이 끊어진다면 조부모와의 다른 끈도 성할 수 있을까? 문득 조금 전의 생각이 틀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와의 끈은 조부모와의 끈보다 가늘지만 덜 중요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내게 낯선 이방인이었다. 그러나 종이 모자를 쓰고 목마를 탄 아이의 모습과 헐렁한 무릎 반바지를 입은 채 초조해하는 청년의 모습, 집에 머무는 것을 싫어해서 멀리 떠나버린 모험가의 모습, 까칠까칠한 어머니까지 삽시간에 홀려버린 바람둥이의 모습은 모두 내 마음에 흥미롭게 다가왔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고 싶었고, 아버지를 내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었다. 속으로만 품고 사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내 아버지임을 드러내고 싶었다. 아버지는 나의 일부였다. 우리의 이름이 같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했다.-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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