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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침묵 - 제3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이선영 지음 / 김영사 / 2010년 1월
평점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우주적 상상력, 댄 브라운의 방대한 스케일을 넘보는"이라는 낚시글이 없어도 이 책은 그저 "피타고라스"를 다룬 책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중학교때인가 고등학교때 누구나가 수학시간에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배운만큼 "피타고라스"는 낯설지 않은 사람이다. 하지만 피타고라스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직각삼각형의 세 변의 길이에 대한 공식인 "a² + b² =c²" 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피타고라스에 대해, 그것도 그가 무리수를 발견한 히파소스를 죽였다는 것에 영감을 얻어 썼다는 이야기였던만큼, 김탁환작가님을 비롯한 심사위원단의 만장일치를 받아 뉴웨이브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만큼 과연 어떤 이야기일지 정말 기대하게 되었다..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 댄 브라운의 방대한 스케일을 뛰어넘는다는 이야기에 추리소설이라 생각하며 읽기시작한 탓인지 이야기의 시작과 함께 조금은 당황스러워졌다. 등장인물들의 낯선 이름들을 몇번이고 되뇌여 조금 익숙해진 뒤 읽기 시작한 직후 한 사람의 시체가 발견되었고, 그와 동시에 바로 범인과 이유를 알아차려버렸기 때문에 정말 당황스러웠다. 히가시노 게이고처럼 대놓고 범인을 밝히고, 범인이 살인을 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하여 살인이 끝으로 만든 것도 아니고, 댄 브라운처럼 살인자는 드러내고 실제 음모자를 숨긴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미야베 미유키를 비롯해 수많은 추리소설처럼 철저히 범인을 숨긴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전혀 추리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저 누구나가 갖고 있음직한 인간의 탐욕과 더불어 그런 탐욕을 쫓는 사람들의 심리묘사에 한 편의 그냥 소설같은 느낌이었다(추리소설은 아니고, 로맨스소설이나 가족소설이 아닌 뭔가 특징지을 수 없는 그런 소설의 느낌이다.. 그런 소설을 뭐라 분류하나?). 어쩌면 작가소개의 글을 읽지 않았더라면 읽는 내내 범인과 동기에 대해 어렴풋하게 느끼며, 추리 소설 중의 한권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처음 보는 작가라 작가소개의 글을 제일 먼저 읽었고, 그래서 처음부터 범인과 동기를 알았기에 전혀 추리소설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결국은 수많은 인간이 갈망하는 권력과 명예욕때문에 점점 추악해져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런 사람들의 끝을 보여주었고, 그런 모습에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른 이야기에서도 읽음직한 이야기였지만, 읽는 내내 이야기 속으로 점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우리와는 너무나도 딴 세상같은 고대 그리스의 이야기였기에, 그러면서도 너무나도 익숙한 피타고라스의 이야기였고, 그 당시엔 새로운 발견이었고 획기적인 이론이었겠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한 수학이론의 이야기였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고, 새로움과 익숙함을 동시에 느끼며, 인간의 끝없는 지식에 대한 갈망과 명예욕, 그리고 사랑에 대한 부질없는 욕심과 더불어 끔찍한 살인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식을 탐하고, 사랑을 탐하고, 권력을 탐하고, 부를 탐했던 자들의 이야기 속에 끝없이 빨려들어갔고, 결국엔 끝없는 욕심에 의해 자신이 이룩한 것들을 놓칠 수 밖에 없었고, 자신의 삶만을 위해 다른 사람은 생각지도 않은 이기심덕택에 이 이야기 속의 수많은 사람들은 불행하게 삶을 마감한 모습에 더욱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기심에 물든 사람들의 곁에서 그저 진실을 알고자한 자도, 사랑을 원한 자도 모두 이기심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세상을 등져야했기에 더더욱 안타까웠고, 권력과 돈에 대한 탐욕뿐만 아니라 지식에 대한 탐욕 역시 두려워해야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을 뿐이었다.
한국인의 소설이라고 여기기엔 너무나도 독특한 소재였고, 낯선 세상의 이야기였기에, 신인작가라고 하기엔 중후한 매력이 느껴지는 이야기였기에 읽으면 읽을수록 감탄하게 되던 이야기.. 그래서인지 "이선영"이라는 작가가 다음엔 또 어떤 이야기를 쓸지 정말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