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평점 :
작년 가을 유시민전장관님의 <청춘의 독서>라는 책을 통해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알게되었다. 노무현전대통령에 대한 사건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2PM의 박재범 탈퇴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들었던, 언론의 어마어마한 힘과 악기능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 꼭 한번쯤은 읽어야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한참을 미루다 드디어 오늘에서야 읽게 되었다. 이미 <청춘의 독서>를 통해 줄거리를 모두 알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읽는 내내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었다. 카타리나 블룸이 파티에서 한 남자를 알게되고, 그 남자가 하필이면 탈영병에 은행강도였으며, 그로 인해 카타리나가 조사를 받게 되고, 그녀에 대한 악의적인 보도를 하는 <차이퉁>이란 신문에 대한 이야기 모두 <청춘의 독서>에서 이야기 해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읽는 내내 지루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미 알고 있지만 그 악의적인 보도를 직접 읽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한 사람들의 반응과 카타리나가 겪었을 고통에 대해 직접 눈으로 보게되다보니 오히려 읽는 내내 더욱 흥분하게 되었다. 황우석박사의 전국민대상 사기사건때 모든 언론에서 신처럼 떠받들였기에 오히려 올바른 정보를 제공한 PD수첩이 폐지직전까지 갔던 것과는 달리 2PM의 박재범사건에 대해 제대로된 확인도 없이 일파만파로 기사를 날랐던 인터넷신문사들에겐 아무런 제재도 없었다(노무현전대통령에 대한 사건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그 사건에 대해선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언론이란 사람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해주고,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그 목적이라 생각한다. 시민들이 국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스스로 알아내기란 어려우니 언론이 그러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시민들이 국가가 올바른 길로 가도록 의견을 낼 수 있게, 국가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주의를 기울이도록 만들어준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언론은 정보전달이라는 순기능만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쉽게 정보를 접하는 수단이라는 특성을 악용하여 제대로 된 정보가 아닌 자신들의 의도가 가득담긴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을 좌지우지하며, 카타리나 블룸을 끝없는 나락으로 빠트리것처럼 박재범도 더 이상 한국에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분명 탈옥병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경찰이 감시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으면서도 자신의 집에서 무사히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카타리나 블룸에게도 잘못은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 노골적으로 언급할 필요도 없고, 그녀의 이름을 드러낼 필요도 없으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수정할 권리란 더더욱이나 없었음에도 <차이퉁>의 기자는 사람들을 자극하기 위해, 자신들의 신문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읽도록 아무런 거리낌없이 사실을 왜곡하고,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만 노출하는 언론인으로서의 소명과 의무감이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그렇게도 당당하게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선 전혀 생각지도 못하며 카타리나에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한번이라도 생각했더라면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을텐데...
그런 저질 신문을 통해 사람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카타리나를 대하는 모습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느끼지만, 그래도 그런 선입견대로 드러내고 사람을 무시하는 모습에 과연 카타리나는 언론에 의해 명예만 잃었는가 생각하게 되었다. 한낱 명예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도, 사생활이 보호될 의무도 깡그리 무시되어야만 했던 카타리나의 마지막 선택은 사람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깨우치게 만들었지않나 싶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한 현실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도피를 하는 것과는 달리 그러한 현실을 만든 장본인에 대해 과감히 복수함으로써 벌을 받게되었지만 그마저도 행복하게 여기던 카타리나.. 그녀의 모습에 황색언론에 대해, 왜곡된 보도의 어마어마한 파장력에 대해 다시 한번 느끼며, 대부분의 언론이 올바른 보도를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보는 <차이퉁>의 왜곡된 보도에 사람들이 더 많은 동요를 보이는 것처럼 나 역시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더 많이 보는 언론의 이야기에 좌지우지 되면서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낄 뿐이다..
한 사람의 목숨을 너무나도 쉽게 앗아가면서도 그 잘못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 역시 그렇게 되지 않도록, 아니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언론이 제대로 되야할텐데.. 카타리나 블룸처럼 또 다시 피해자를 만들지 않도록, 정치와 돈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그런 언론에 의해 세상 사람들이 정말 제대로된 사실을 접할 수 있는 현실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