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의 인연 - 최인호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최인호작가님을 처음 만난 건 중학교 3학년쯤 부모님이 사주신 동아출판사(그 당시엔 두산 동아가 아니었다..)의 "한국소설작가대계"라는 이른바 한국소설전집이란 책의 58권에서였다. 1권 신소설(이 분은 정말 낯선 분이었다..)에서 시작하여 유명한 한국근대소설작가인이 이광수와 염상섭, 현진건, 김유정 등등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서 수없이 작품을 접했던 분들로 대부분 구성되어있는 전집을 결국 난 다 읽지 못했다.. 60권이란 어마어마한 분량도 그렇지만, 교과서에서 흔히 보던 작품들이어서인지 도통 재미가 없었고, 중3이라고 해봐야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에 사주신 것이라 학교를 다니느라 읽을 시간도 없었다..  

그래도 첫 포부는 대단했었다.. 1권부터 시작하는 것은 재미가 없으니까 60권부터 거꾸로 읽어서 1권에 도달하자고 마음먹었고, 60권 윤흥길작가님의 책으로 시작하여 딱 58권 최인호 작가님에 도달할 때까진 정말 잘 읽었다.. 하지만 그 세권이 문제였다.. 차라리 익숙한 작품을 읽었더라면 나았을텐데.. 낯선 이야기들을 읽으며 진을 빼서인지 결국 무영탑과 심훈의 상록수를 제외하곤 대부분 단편만 읽은 채 그렇게 덮어버린 기억이 있다.. 그래도 처음 읽은 세 권의 책 중 최인호작가님의 책은 열심히 읽긴 읽었었나 보다.. 대학을 다닐 때 아버지가 사신 <달콤한 인생>이란 최인호 작가님의 책을 보고 재밌을까 싶어 읽었는데 어쩐지 읽은 듯한 느낌이 드는 이야기들이 있었고, 알고보니 몇년전에 전집에서 읽은 그 이야기였었다는 것에 놀라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인호작가님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그 후론 최인호작가님의 책이나 짧은 단편을 얼핏이라도 본 적이 없었다. 얼마전 뉴스를 보며 최인호작가님이 암투병으로 인해 몇십년을 집필해온 <가족>의 연재를 그만두신다는 것을 알게된 후에야 다시 한번 작가님의 이야기들을 읽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집은 책이 바로 <최인호의 인연>이다. 만약 1권부터 읽었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인연인 작가님이 최인호작가님이고, 만약 며칠전 뉴스를 보지 않았더라면 다시 읽어보려는 마음도 생기지 않았을테니 이 책과 내가 만난 것도 인연은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만남뿐만 아니라 어떠한 사물과의 만남도 인간의 삶에 있어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점에서 본다면 내가 수많은 책들 중에 이 책을 읽게된 것은 정말 깊은 인연이 아닌가 싶었다. 최인호작가님처럼 버려진 난초 한그루, 집 뜰에 심어진 나무 한그루와 같은 인연은 나에겐 없는 것 같지만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날 수 있었으니 나의 인연도 행복한 인연이란 생각을 하며 한 편한편 이야기들이 줄어드는 것을 슬퍼하며, 작가님의 행복한 또 다른 인연이야기가 궁금하여 한장만 더 한장만 더 그러며 결국엔 앉은 자리에서 반넘게를 읽게되버리는 책이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첫눈에 반하고, 결국 그 아내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에서부터 어릴 적 나이가 많으신 어머니를 부끄러워했지만 어머니의 살갗을 손에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와 비루한 난과의 인연에 이르는 이야기까지 하나같이 행복하고, 하나같이 잔잔한 이야기들이었다.. 요즘과는 달리 고즈넉한 삶의 모습과 가난하지만 많은 식구들이 오순도순사는 옛 시절의 모습이 보이는 이야기에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고, 편안해졌다.. 더욱이 그런 이야기에 질세라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담아낸 사진에 다시 한번 편안해지며 아무런 이야기가 쓰여져 있지않음에도 한참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인연을 아름답게 여기고, 인생을 수많은 연습을 통해 이별이 아닌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을 배워나가는 훈련이라 표현하던 최인호 작가님의 삶을 바라보며 난 언제쯤 저렇게 평온하고, 한적한 삶을 살며 인생을 되돌아보게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위해 인연을 아름답게 여기며 소중히 하기보단 한 명의 경쟁상대, 나에겐 쓸모없는 것이란 이름으로 인연을 가리운 채 각박하게 살고 있는 나이여서인지, 아직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채 인연이라 느끼기도 전에 헤어져버리며, 그 헤어짐도 쉽게 잊어버리게 되기에 더더욱 최인호작가님의 삶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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