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라디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2
레오폴도 가우트 지음, 이원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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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자정, 이계로 통하는 문이 열리는 곳 <고스트 라디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말과는 달리 호아킨이 방송하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 라디오>는 이계를 연결해주어 환타지 세상으로 넘어가는 그런 문은 아니었다. 단순히 전화를 건 사람만이 자신의 이야기가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알 수 있는 도시괴담이나 유령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방송이었을 뿐이었다. 유령결혼식을 위해 자신이 죽인 여자가 자신을 쫓아다닌다는 이야기나 전쟁으로 인해 집을 떠나 죽은 아들의 유령을 보았다던가 어느 밤 괴소리와 함께 사라진 아이이야기처럼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괴존재를 만나거나 괴현상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다루는 방송과 호아킨의 과거 굴곡진 삶의 모습도 나름 흥미진진했지만, 그것뿐이었다. 

정말로 불면의 밤, 라디오를 통해 다른 세계로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한 것과는 달리 그저 호아킨의 불운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과거의 이야기와 사람들의 전화제보만으로 이루어진, 이계를 다룰 뿐, 정작 다른 세계로 넘어가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약 200페이지가량 읽었을 때쯤부터 점차 이야기에 흥미를 잃고 있었다. 이제까지 이야기해온 것처럼 그저 방송이야기를 다루고, 호아킨의 과거만을 다루겠거니 생각하며 더 이상의 기대는 없이 이야기 흐름만을 쫓아갈 뿐이었다.  

그렇게 기대감을 접기 시작했을 때, 그제서야 이 책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저 자동차사고로 인해 부모를 잃은 사고에서 자신만이 살아남았고, 그 사고로 자신과 동일한 처지에 놓인 친구 가브리엘을 만났고, 불의의 사고로 가브리엘을 잃고 또 홀로 살아남은 죽음과 너무나 가까운 호아킨은 그자신도 모르는 사이 전화를 통해 듣고 있는 이야기를 그 순간을 경험하기 시작했고, 정체모를 괴소리가 귀에 들리며, 누군가 이상한 사람이 그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호아킨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방송국의 전화로, 집의 전화로, 약간의 단서를 남기는 것 같으면서도 전혀 무관한 곳으로 연결되는 단서들.. 그런 단서들로 인해 호아킨은 다른 사람들의 눈엔 피로에 지친 것처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눈엔 미친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자신에게 접근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밝히기 위해 무식하게도 무작정 덤빌 수 밖에 없었다.  

현실같으면서도 꿈 속을 헤매며, 공간과 시간이 모두 엉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인지조차도 분간이 되지 않는 세상.. 호아킨은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그런 세상 속에서 점점 홀로 고립되어갈 뿐이었다. 그래도 과거를 통해 모든 실마리를 풀어내고 다시 자신의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래저래 나의 예상과는 많은 점이 빗나간 이야기였다. 내가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한 것은 맞는지 조금 찜찜한 결말도 그렇고.. 나 역시 고스트 라디오를 통해 어딘가 다른 세계 속을 홀로 경험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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