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의 도시
폴 오스터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한줄기 희망도 없는 곳이라고 여겨졌다. 단지 사라진 오빠를 찾으러 위험을 무릎쓰고 들어간 곳인데, 그곳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삶의 터전이라기보단 사람에게 희망조차 빼앗아가는 절망만이 가득차있는 벗어날 수도 없는 폐허의 도시였다. 가능한 빨리 죽음을 맞이하기위해 미친듯이 달리는 죽음의 질주자가 수두룩하고, 죽음의 질주를 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조금 더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안락사클리닉을 방문하거나 암살클럽에 가입하는,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원하는 절망의 도시.. 그런 도시에 안나는 연락이 끊긴 오빠를 찾아 홀로 들어갔고, 어느새 자신도 그 도시에 적응하고 있었다. 

시체의 옷을 벗겨갈 정도로 열악한 환경과 먹을 음식도 제대로 없어 식품을 구매하는 사람, 식품을 공급하는 사람 모두를 약탈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눈에 띄는 일자리라곤 조금이라도 쓸모있는 재활용품을 찾는 물건사냥꾼과 닥치는대로 쓰레기를 줍는 쓰레기 수거인밖에 없어보이는 부패와 가난과 고통이 가득한 도시, 길을 걷다가도 사람이 죽어가는 폐허의 도시 속에서 살아남기란 너무나도 힘겨워보였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낯설지만은 않았다. 서로가 도와도 부족한 상황에서 자신들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눈먼자들의 도시>가, 안나를 꼬여내어 나쁜짓을 하려던 뒤자르댕과 길거리의 시체가 가진 물건을 탐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독일군이 레닌그라드를 포위한 900여일동안 책을 접착한 아교를 모아서 먹고, 얼어붙은 시체에서 먹을 것을 구하던 러시아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도둑들의 도시>에서 한 번쯤은, 아니면 그보다 더 여러번 보았던 모습이었다.

그리고 설마 이런 현실이 있었을 것이라곤 믿을 수 없는, 그런 끔찍한 일이 과거의 러시아에서, 그리고 폴 오스터의 폐허의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나라면 도무지 단 며칠도 버틸 수 없을 것같은 도시.. 그럼에도 안나는 그런 도시에 적응해나갔다.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기 보단 혼자하는 길을 택했지만 때론 아무 연관도 없는 사람을 돕고, 사랑이라곤 없을 것 같은 삭막한 도시에서 사랑을 하고, 탈출할 길이라곤 없는 그런 곳에서 안나는 한줄기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는 오빠를 만나거나 오빠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언젠가는 이 도시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안고.. 

사물과 사람이 모두 무너지는, 하나씩 하나씩 모든 것이 사라져 가는 그런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망이란 것을 잃은 채 죽음을 선택할 때에 안나는 그런 조건에서도 희망을 찾았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너무나도 절망적이라 어떠한 생물체도 살지 못할 것 같던 도시의 모습이 그나마도 사람이 살아가는 곳, 그리고 작은 희망이라도 존재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는 달리 암담한 곳이지만 결국엔 우리가 사는 곳과 다를 것도 없던 곳이었던 <폐허의 도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이렇게 변해가지 않도록 우리는 희망을 갖고, 서로를 이해하며, 무능력한 정치자를 뽑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살아가야하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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