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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리뷰어처럼 나 역시 얼마전서부터는 일본추리소설을 읽어도 딱히 "이거야!!"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책을 만나지 못했었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연애소설처럼 뻔하지도 않고, 가끔가다 만나는 고전소설 속의 난해함도 없고, 잔혹한 범죄묘사나 범인을 찾는 형사를 뒤쫓아가는 이야기는 추리소설이라는 기본적인 골격은 같을지라도 다 다른 매력이 있고, 긴장감이 넘치니 전혀 지루하지도 않다. 하지만 딱 와닿는 소설은 없다.. 서평단 도서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을 읽을 때에도 "알라우네" 어쩌구 하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 순식간에 읽었고, 끔찍한 현장묘사에 그리고 범인의 심리상태에 놀라게 되는 반면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싶다는 생각을 이끌어내지는 못하는 책이었다.. 가가형사시리즈로 비교적 최근에 만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도 그냥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기에 의식적으로 읽어내는 것뿐이고..긴다이치 쿄스케도 김전일의 할아버지이니 찾아 읽는 것에 불과했다.. 이전에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와 <스나크 사냥>,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을 만날 때의 감동은 없는 것일까라는 회의감이 들때 바로 이 책, <고백>을 만나게 되었다..
<고백>은 표지는 전혀 내 취향이 아니고, 언제서부터인가 일본소설은 도서관에서 빌려읽는 편이고(소설만 읽는다고 엄마와 동생들에게 한소리를 들은 뒤, 가급적 책은 역사, 예술같은 인문관련 책을 사려고 노력중이다..), 딱히 관심을 가지고 신간소설을 살펴보는 것은 아니라 어쩌면 평생 안 읽었을 수도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며칠내내 알라딘서재의 블로거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이 촌스럽기 짝이 없는 표지(이건 절대적으로 내 취향이긴하다..),..그리고 "고백"이란 간략한 제목..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이렇게 인기가 있나 싶어 줄거리를 보게되었고, 도저히 읽지않고는 못배기게 되었다.
"내 딸 마나미는 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살해당했습니다. 그 범인은 바로 우리 반에 있습니다." 술렁대는 학생들에게 유코는 또 하나의 충격적인 고백을 던진다. "저는 두 사람이 생명의 무게와 소중함을 알았으면 합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깨닫고 그 죄를 지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그래서…." 그녀가 준비한 복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런 소개글을 읽고서도 이 책을 읽지않는 사람은 정말로 자제력이 강한 사람일 것이다. 나는 그녀가 범인들에게 한 복수가 무엇일지, 그리고 사고가 아닌 살해당한 딸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죽임을 당한 것인지 그것이 알고싶어 약간의 고민(결국 이건,, 책을 사기위한 정당화의 한 방편이었을 뿐이었다.. 고민도 없이 책을 사대면 조금 찔리니까..)끝에 당일배송을 받아 읽기 시작했다..
오랜만이었다.. 이런 소설은.. 가을이 깊어져가다보니 원래 쌀쌀하기도 하지만.. 따뜻한 방구석에앉아 포근한 이불을 덮은 채 밤을 지새우며 읽었다. 새벽 세시에 이 책을 집은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2시간 정도면 읽을 것이라 생각했던 책이 작가의 필력을 곱씹느라 자꾸 앞페이지를 뒤적거리다보니 어느새 아침이었다..
첫 시작은 유코의 이야기였다. 요즘 청소년은 처벌하지 않는 법과 루나시 사건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교사 유코의 이야기는 때론 아직 미성년자이기에 실수가 아닌 "살해"라는 끔찍한 동기를 가지고 살해했음에도 약한 처벌을 받으며 반성하지 않는 미성년자를 직접 처벌하기 위해 살인범이 되어야했던 아버지의 이야기인 <방황하는 칼날>을 떠올리게도 했고, 때론 중고등학생이 처벌을 받지않기 위해 자신들보다 어린 초등학생을 시켜 범행을 저질렀던 TV 속 뉴스를 떠올리게도 했다.
확실히 요즘 청소년들은 무섭다. 왕따당하지않기 위해 일진학생에게 성상납을 하고, 마음에 안드는 애를 집단폭행하며. 범죄이유에 "재미로"라고 대답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 중엔 분명 유코가 말한 루나시처럼 주변의 관심을 끌기위해 사건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을테고(물론 이건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범죄에도 종종 있는 것같다..), 그런 경우 언론매체의 관심이 오히려 가해자를 더 자극해주는 요인이 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니 참 씁쓸하다.. 사건의 전달도 중요하지만 모방범죄의 가능성과 선정성을 강조하는 언론의 모습은 양면적이니 말이다.. 아무튼.. 유코는 가해자가 원하는 대로 사건을 공개하기보단, 자신이 스스로 그들이 스스로 죄를 뉘우치며 살도록 하는 방법으로 복수를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5개의 고백.. 유코의 반 학생이었던 미즈키와 범인 나오키와 그의 엄마, 그리고 또 다른 범인 슈야와 마지막 유코의 고백이었다. 한 가지 사건이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사건으로 보여지던 <라쇼몽>에서처럼 유코의 아이가 죽은 사건을 서로의 시각에서 바라보며(쓰고 보니 다른 리뷰에도 이 얘기가 있다.. 역시 잘못 느낀게 아니었다..), 사건 속에 숨겨진 진실들이 하나씩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살해하려는 마음을 지녔던 학생과 모른 채 살해를 하게된 학생.. 그리고 그 학생들에게 복수를 하려는 선생님이라는 것에 시작된 <고백>.. 한 사람 한 사람의 섬세한 내면묘사와 고백을 통해 밝혀지는 사건의 진실, 그리고 유코가 행한 복수이야기라는 조금은 뻔한 주제같으면서도 기존의 이야기에서 느끼지못했던 느낌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어느것 하나 우연에 의해 일어난 일이기보단 무엇인가가 시발점이 되어 나타나게 된 사건과 그 사건의 끝.. 정말이지 한 편 한 편의 고백을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밝혀지는 사건의 이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말 이 책이 이 작가의 데뷔작인것조차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잘 짜여진 직물처럼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없이 깔끔하면서도 충격적이면서 긴장감이 넘치던 이야기였다.. 거두절미하고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 중의 하나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