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수대 위의 까치 - 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읽기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10월
평점 :
처음 진중권교수님의 글을 접한 것이 바로 <교수대 위의 까치>이다. 주변사람들이 아무리 좋다고 하여도 내 입맛에 맞지않음 쓸모가 없듯 친구들이 아무리 <미학 오디세이>가 좋다고 추천을 하여도 선뜻 손이 가지 않던 책이라 여러번을 미뤄왔고, 솔직히 오늘 진중권교수님의 강연을 듣기 전까지도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교수대 위의 까치> 속에 푼크툼으로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그림을 본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솔직히 푼크툼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잘 이해를 하지 못해서인지 처음 이 책을 읽을 때엔 그냥 내가 아는 그림의 다른 해석 혹은 전혀 모르던 그림의 소개정도로만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그러다 바로 어제(10월 19일 월요일) 알라딘에서 주최한 저자강연회에 다녀온 뒤 이 책에 푹 빠져 버렸다.. 진중권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진과 회화의 변화에 대해 배우고, 푼크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림을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운 뒤 이 책을 읽는 재미는 이전에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무엇이었다.
역시 한 번의 인상적인 강연이 혼자 읽는 것보단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것 같다.. 강연회를 듣고 집에 와선 결국 <교수대위의 까치>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니 푼크툼도, 도상학도 모두 프롤로그에서 진중권교수님이 한 번씩 설명해 놓으신 개념이었다.. 그런데도 책에서 읽은 기억보단 강연을 통해 배운 것이 더 인상적이고, 책을 다시 읽기 전까진 이렇게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있었는지도 미쳐 깨닫지 못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나의 가장 안좋은 습관은 바로, 미술관련 책을 읽을 때에 그림에 대한 설명을 무조건 암기를 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그림을 이해할 때 그림 속에 숨겨진 도상, 즉 아이콘을 모르면 그 인물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조차 이해할 수가 없었기에 사자가죽을 뒤집어 쓴 인물은 헤라클레스이고, 커다란 열쇠를 들고 있는 사람은 베드로이며, 아테나의 곁에는 올빼미가 있다는 것을 외우는 것은 그림의 등장인물을 파악하여 그림의 주제를 알아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기에 아이콘에 목숨을 걸고 노력을 했었다.. 책에서 읽은 그림에 대한 설명이 100%로 옳은 의견이라 생각하며..
하지만 그런 방법이 결국엔 수능을 보기 위해 고등학교시절 천편일률적으로 시의 주제, 시 속에 등장하는 단어의 함축적인 의미를 달달 외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나에게 좋은 그림이 다른 사람에겐 별 인상을 남기지 않는 그림일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 명화가 아닐 수도 있듯 사람들은 누구나가 다르고, 그림을 보고 느끼는 바도 다르며, 자신이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찾아보며, 그림을 읽어주는 책에 의존하기보단 그림을 읽는 방법을 배워 스스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읽으라는 것이 이 책의 주된 주제였다..
그렇게 진중권교수님은 남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마음을 확 사로잡아버린 12편의 그림에 대해 도상학적인 의미와 더불어 남들은 눈여겨 보지않던 세밀한 부분에 대해, 그리고 그림의 새로운 의미를 읽어내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이 책속의 12점의 그림 중 딱 한점의 그림을 제외하곤 처음 보는 그림들이었기에 그림을 독창적으로 읽는다는 것이 쉽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원래 그림의 해석도 모르기에 진중권교수님이 친히 설명해주시는 기본적인 해석에 간신히 의존하는 판국에 새로운 접근방법에 감탄하기란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유일하게 아는 딱 한점의 그림을 통해 새롭게 접근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가 있었다.
바로 이 책의 표제작인 브뤼헐의 <교수대 위의 까치>.. 다른 책에서도 이 그림은 여러번 접한 적이 있다. 네덜란드의 속담이나 놀이종류를 한 폭의 그림에 담아내던 화가답게 교수대를 중심으로 춤을 추는 사람, 똥을 누는 사람, 교수대 위의 까치에도 속담이 담겨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까지 교수대의 모습이 3차원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불가능 형태라는 것은 진중권교수님의 말씀에 의해 처음 알게 된 부분이었다.. 그럼 이 뒤틀린 교수대가 의미하는 바는? 브뤼헐이 세계를 본 감정이 아닐까라는 추측일뿐이라는 설명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눈여겨 보지 않던 뒤틀린 교수대에 의해 푼크툼을 느끼고 그 것의 의미를 파악해나가는 그림읽기.. 이것이야 말론 진중권교수님이 수동적인 독자에서 벗어나 우리가 앞으로 나가야할 그림읽기 방법이었다.. 사진작가의 이론이었던 푼크툼에 꽂혀, 그 의미를 그림읽기에도 접하고, 그러한 그림읽기를 강조하는 책.. 확실히 이 책은 다른 책들과는 다른 방식의 그림읽기였고, 나에게도 이런 독특한 그림목록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지를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수많은 책에서 다루는 명화들도 좋지만, 별 특이할 것은 없어보이지만 나를 유혹하고, 나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그런 그림들을 찾게되기까지 수많은 전시회도 찾아다니고, 진중권 교수님의 말씀처럼 "오타쿠"가 되어 궁금증이 생기는 것도 파헤쳐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