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추억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8월초 밀리언 하우스에선 이정명작가의 새로운 책, <나에 관한 너의 거짓말>을 가제본으로 먼저 만날 수 있는 이벤트를 한 적이 있었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이야기인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원작을 쓰셨고, <뿌리깊은 나무>라는 세종시대 연쇄살인사건을 쓰셨던 작가이니 만큼 이번에는 또 어떤 역사이야기일까 기대를 하며 가제본을 받았었다. 근데 왠걸,, 만약 이정명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을 모른 채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어느 외국작가의 책이라고 생각했을정도로 이정명작가의 느낌은 전혀 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의 이야기였었다. 피해자의 시체에 웃음을 남기는 살인범과 그 살인범을 잡으려는 매코이 형사의 이야기.. 벌써 읽은지 2달이 다되었고, 그 동안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여전히 <나에 관한 너의 거짓말>은 잊히지 않는 책이었다. 

그리고 <나에 관한 너의 거짓말>은 <악의 추억>이란 제목을 달고 얼마전 출간되었다. 이전의 제목이었던 <나에 관한 너의 거짓말>도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처음 작품을 만날 때 그 제목으로 만나서인지 <악의 추억>이란 제목엔 정이 들지 않는 것 같다.. 바뀐 제목에 이어 가제본의 갈색 표지에서 바닷가에 쓰러져있는 여자의 모습으로 바뀐 표지는 두 권의 책이 별개라고 느껴지게 하였다. 많은 리뷰어들의 의견을 받은 만큼 내용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싶어 가제본과 비교해보니 첫장에서부터 변화가 보였다. 물론 내용이 완전히 바뀌는 그런 변화가 아닌, 문장이 조금 더 섬세해진 듯한 느낌이랄까? 


p.11 라일라는 귀를 기울였다. 구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롤러가 구르고 케이블이 움직였다. 까마득한 타워 아래 케이블카 승강장이 어렴풋이 보였다. 안개 속에서 노란 테이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글씨가 간결하고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을 내렸다. 

→ 라일라는 안개 속을 떠가는 케이블카 안에서 귀를 기울였다. 어디선가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먼 파도소리처럼 아득해서 현실의 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약한 진동과 함께 조금씩 다가와 마침내 선명하게 느껴졌다. 거대한 롤러가 구르고 케이블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까마득한 타워와 케이블카 승강장이 어렴풋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안개 속에서 노란 테이프가 희미하게 보였다. 테이프에 새겨진 검은 글씨가 간결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을 내렸다. 

별 생각없이 출간된 책을 보았을 때에는 똑같은 느낌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두권을 같이 보니 확실히 달라졌다. 내용은 바뀌진않았지만, 라일라가 느끼는 감정이 더욱 세세하게 느껴지도록 묘사부분이 더욱 세밀해졌고, 긴장감도 강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비교하며 읽기 시작한 <악의 추억>은 가제본으로 읽을 때의 인상이 강해서인지 나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여전히 이 책은 <구해줘>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책이었다. 물론 <악의 추억>은 끈질기게 자신과는 악연인 한 명의 살인범을 추격하는 형사이야기이니 <구해줘>와는 스토리상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하지만 <악의 추억>의 첫 희생자가 케이블카에서 죽었다는 것과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정직되었던 형사가 참여하게 되는 모습이 <구해줘>에서 그레이스의 딸을 구하기 위해 강등되었지만 그래도 현재의 직업인 경찰직을 내놓는 조건으로 사건에 참여했던 형사의 모습과 결국 줄리에트를 대신해 케이블카에서 죽는 모습이 자꾸만 연상되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초반부분 나는 정말 이 책에 집중하지 못했었다(아무래도 계속해서 비슷할거야라며 강박관념처럼 비슷한 것을 찾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읽다보니 책 내용에 집중을 하지 못한 것일수도..).. 

하지만 아산화질소를 이용하여 자신이 죽인 사람에게 웃게만든 살인범과 피해자의 죽음이 결국 그녀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사람의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에 푹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가해자를 고통스럽게 죽게만들기 위해 피해자였던 사람을 또 한번 피해자로 만든다? 이제까지 내가 읽은 복수극들이란 자신을 괴롭힌 사람에게 똑같은 고통을 주거나 자신의 자식이나 형제와 같은 자신의 혈연에게 고통을 준 사람에게 보복하는 이야기였다. 근데!!! 피해자를 또 한번 피해자로 만들다니!! 어떤 면에선 범죄를 저지르고도 제대로 처벌받지도 않고, 오히려 사회의 기득권자로서 피해자보다 당당한 모습으로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가해자를 옭아매기 위한 방법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보단 도대체 어떤 심리를 가진 살인범이기에 피해자를 또 한번 고통스럽게 만드나 싶었다. 그리고 피해자를 다시 한번 고통스럽게 만든 것도 모자라 이산화질소를 이용해 죽은 이의 얼굴에 미소를 남기다니.. 정말 사이코패스가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범죄였다. 

이전의 데니스 코헨이 벌인 연쇄살인이 다중살인방식으로 한 명의 피해자로 인해 그녀의 가족들이 자살을 하고, 교통사고가 나고, 그로인해 2차 3차 죽음이 이어져 데니스 코헨의 꼬리를 늦게 잡을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또 다시 연쇄살인을 일으킨 범인도 그러했다. 다만.. 피해자의 가족이 아닌 가해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피해자의 가족에 의해 목숨을 잃게된다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하나의 살인으로 인해 발생되는 수많은 죽음.. 이렇게 인간의 추악한 범죄가 한 인간에게 상처를 남기고, 그 상처가 결국 곪아 그 사람을 천천히 죽여가기에 살인은, 그리고 모든 범죄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이 책 속의 이야기를 통해 만나게 되는 범인과 그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서서히 드러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진실"이 아니다. 결코 한 사람, 아니 여러사람의 희생 속에 숨겨진 진실이 아름다울 수는 없었다. 자신의 가족을 잃고나서 자신에게 생긴 상처로 인해 서서히 자신을 죽여가며 만들어낸 사건이었기에.. 그들의 희생으로 인해 밝혀진 진실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수도 없는 슬프고도 안타까운 진실이었다.. 그리고 결코 이런 사건이 우리나라에선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깊은 바람뿐이다..

 덧) 예전에 이 책을 읽고 보낸 설문조사에 내가 낸 의견이 반영된 책을 보니 왠지 뿌듯하다. 나말고 다른 분들도 같은 의견을 내셨을 수도 있지만.. 먼저, 그냥 밋밋하게 백지상태의 낱말퍼즐이 있던 것이 데니스 코헨이 풀다 남은 상태인 몇 단어를 제외하곤 채워진 상태로 바뀌어있었고, 카슨형사의 상태가 오락가락하던 것이 일관되게 정리되었고, 마지막으로 알사탕이벤트같은 것을 하면 좋겠다고 했는데 바로 내일부터 알사탕이벤트를 한다^^ 도가니때에는 인터넷에서 연재되었던 소설을 책으로 출간되기전 가제본으로 남들보다 먼저 읽는다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악의 추억>은 출간되기전 읽어보고, 책에 대한 설문조사에 낸 의견이 반영되어 약간의 수정이 가미된 책이어서인지 같은 가제본이었지만, 전혀 다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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