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역시 휴가가 필요해..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김연수는 나의 입맛에 맞지 않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을 많이 읽어본 것도 아니다. 단 한권, 그것도 단편 2009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가지 즐거움>와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을 읽은 것이 전부이다. 그나마 읽은 두 개의 단편 중 후자의 경우는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한 편의 이야기만으로도 나는 김연수와 맞지않는다고 말하며, 그의 작품을 더 이상 읽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읽어봐야 맞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이번 책 역시 그저 바라만 보던 책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읽든, 얼마나 좋은 평을 받든, 나와는 상관없는 책이라고 못박으며 관심을 끊었었다.  

아마도 진중권의 미학오디세이를 추천해주었던,나의 오랜 친구가 나에게 이 책을 선물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관심을 끊은 채 이 책은 나의 기억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연상시키는 제목 속의 "세계의 끝"만을 기억하며, 언젠가 김연수의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을 때 한 번씩 기억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존재감도 없이 사라졌을 책이었고, 책을 읽은 지금도 여전히 김연수작가님의 글에 완전히 동화되지는 못한 상태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한발자국 그에게 다가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레이먼드 카버의 글을 읽지 않아 오마주라는 것조차 알아챌 수도 없고, 이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시나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지 못했기에 제대로 이야기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고통을 이야기한다는 이야기에서 매번 상실을 이야기하는 하루키를 떠올리며, 그나마 환타지적인 요소가 들어있는 하루키의 책엔 반하면서도 정작 고통을 이야기하는 김연수의 글에선 우울함만을 느낄 뿐이었다. 자신이 사랑한 케이케이의 흔적을 찾아 밤메를 찾고, 흑두루미를 만나기 위해 이즈미를 찾고,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라스베가스로 떠난 그들의 이야기에 동화되기보단 그들의 가슴 속에 담긴 그 고통에, 나의 고통이 반응할까 두려워 오히려 거리를 두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흔세 살이란 이런 나이야. 반환점을 돌아서 얼마간 그 동안 그랬듯이 열심히 뛰어가다가 문득 깨닫는 거야. 이 길이 언젠가 한번 와본 길이라는 걸. 지금까지 온 만큼 다시 달려가야 이 모든게 끝나리라는 걸. 그 사람도 그런 게 지겨워서 자살했을 거야. – 68쪽     

아직 인생의 반환기란 마흔세살이 한걸음한걸음 다가가고 있는 처지이지만, 열심히 뛰었다기보단 어쩐지 남들에 비해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을 하며 살고 있기에, 아직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그리 쉽지 않기에 김연수의 글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면서도 그의 이야기 하나하나를 어느새 되새기고 있다. 자신의 인생에,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에 정당성을 찾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고, 결국 가족에게도 못전한 자신의 고통을 타인에게 남기고 간 노인처럼, 그 노인의 고통에 자신이 더욱 아팠던 사서처럼 나에게도 휴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