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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평점 :
8월 21일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작 <무지개>가 출간된다는 이야기에 열흘만 참자고 생각했던것이 한달이 지나서야 겨우 읽게되었다. 그녀의 작품은 빠짐없이 읽고 있기때문에, 언젠가는 반드시 읽을 것이라는 생각에 매번 다른 책을 읽다보니 벌써 한 달이란 시간이 흘러버렸다. 뜨거운 태양과 따사로운 햇볕을 느낄 수 있던 여름의 끝자락에, 옆에서 갸르릉 거리는 고양이를 쿠션삼아 침대에 앉아 읽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텐데.. 여름의 이야기를 가을에 읽으니 조금은 묘한 느낌이다..
처음 출간예정이었을 때의 표지를 보고 정말 당황스러웠다.. 고갱의 그림이 떠오르는 듯한 타히티의 처녀들의 모습과 너무나 무지막지하게 씌여져 있는 무지개라는 제목에 설마 진짜 이 표지를 사용하지는 않겠지 싶을 정도였다. 다행히도 실제 출간된 책은 이야기와 너무나도 어울리는 한 까무잡잡한 소녀의 모습이 그려져있었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인 에이코는 타히티분위기가 느껴지는 레스토랑에서 10년째 일을 하고 있는 직원이었다. 멀리 떨어져있지만 언제나 의지가 되었고, 친구와는 다르게 아무 말도 필요없는 존재였던 엄마가 얼마전 돌아가신.. 그래서 결국 이 세상에 혼자 남았다는 생각을 하는 쓸쓸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만약 그녀에게 <키친>에서처럼 엄마와 친했던 착한 꽃집 총각이라도 있었으면 쓰러지지 않았을텐데.. 그녀는 자신의 외로움을 일로 채우듯, 자신의 몸상태는 생각지 않고 무리하다 결국 쓰러지고야 말았다.
그리고 쓰러졌을 때 전화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에 나 역시 울컥했다. 같은 혈연인 친척은 있지만 뜸한 연락만큼 그런 일로 연락을 하고 싶진 않고, 친구도 있지만 친구에게 말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고, 결국 나의 가족에게밖에 하소연할 때가 없는데 그런 가족이 없는 슬픔이라니..
<키친> 속의 그녀 미카게가 가족이 없는 슬픔과 상처를 유이치에 의해 치유했던 것처럼 에이코에게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녀를 위해 슬퍼해주고, 그녀의 아픔을 이해해주고, 그녀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다행히도 에이코에게도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에이코의 오너이자 유부남이었다. 음... 그냥 싱글남으로 설정했더라면 어떤 갈등도 없이 한번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런 제약을 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썩 기분좋은 설정은 아니었다. 물론 아내가 다른 남자의 아기를 임신하였고, 별거 중인 부부라고 해도 불륜은 불륜이니까..
말 못하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사랑해주고, 식물에 자신의 마음을 듬뿍 전해주는 에이코아 오너 다카다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상대라는 느낌은 들지만 다카다가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고, 에이코에게 말한대로 자신의 가족이 사는 작은 집에서 자신의 아이를 키우며 살아갈 준비를 하는 모습이 조금만 그려졌더라면 오히려 더 만족했을지 모르지만 <무지개> 속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사랑을 팩스 한장으로 전하고, 그 한장에서 사랑을 느끼며,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할 뿐이었다.
첫 결혼에서 실패한 뒤, 어렵게나마 이혼을 하고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닮았던 호텔맨과 결혼했던 노부인처럼 결혼의 실패를 덮어두기보단 잠시 힘들지 모르겠지만 이겨내고 에이코와의 사랑을 이어갔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그래도 에이코와 다카다가 서로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에이코 자신도 잃었던 기운을 회복하였으니 다행인 것인가? 아무튼 해피엔딩 식의 결말이라 조금은 힘겨웠던 에이코에겐 좋은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덧붙이자면, 이래저래 이 책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전 작품인 <불륜과 남미>를 떠오르게 한다. 불륜이야기도 그렇고, 타히티 모습을 한 식당도 그렇고, 타히티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야기도 그렇고, 결정적으로 요시모토 바나나가 타히티를 체험한 뒤 이 이야기를 썼다는 것이 그렇다. <불륜과 남미>의 배경이 남미라는 것과 이 책의 배경이 타히티라는 것을 빼곤 흡사한 분위기의 전형적인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이니 말이다. 그 때도 바나나가 가본 중남미에 훌쩍 떠나보고 싶었는데, 이번엔 바다가 보이는 수상 방갈로에서 묶고있던 에이코처럼, 돌고래와 놀고있던 바나나님처럼 타히티의 매력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 근데.. 책이 조금 찢어져서 와서 조금 슬프다.. 교환할 정도로 많이 찢어진 것은 아니니 그냥 봐야하고, 그냥 보자니 5~6페이지에 걸쳐 2~3mm정도로 두군데가 찣어져 있으니... 어딘가에 걸린 것을 그냥 빼다 그렇게 된 것 같아보이기도 하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냥 조금 슬프다.. 그리고 인쇄하다 어떻게 된 것인지 2~3페이지 정도는 다른 페이지에 비해 글씨가 진하게 인쇄된 것도 마음에 걸리고.. 별것아니니 신경쓰지말자고 생각해놓고도, 계속해서 떠오르니.. 나도 참..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