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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해피 데이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0월
평점 :
한참 오쿠다 히데오의 책을 읽을 때가 있었다. 그냥 닥터 이라부의 엉뚱한 모습에 반하고, 세금을 내기 싫어 일본국민이길 포기했던 아버지의 모습에 웃으며, 조금은 야한 듯한 라라리포의 이야기에 푹 빠져지내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의 책을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이제까지 내가 읽었던 그의 책과는 달리 조금은 무거운 분위기에, 3권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방해자>였다.. 그 책을 마지막으로 여전히 안읽은 오쿠다 히데오의 책이 몇권있었지만 딱히 끌리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그의 신간인 <오 해피 데이>를 나오자 마자 읽게 되었다.
바로 직전에 읽은 <방해자>와는 달리 <오 해피 데이>는 일상에 지친 6명의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로, 그리 무겁지 않은,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권태와 행복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식들은 이제 자신의 앞가림을 한다며 엄마마음을 몰라주고,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아내는 별거와 동시에 집은 나가고, 집안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시작한 주소 하나에 7엔짜리 부업을 하며, 회사가 도산하여 어느새 실직해버리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작정 사고만 치는 남편에 건강을 살리며 지구를 지키자는 친환경적인 삶에 푹빠진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은 그저 일상에 지쳐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활력소가 되어주는 일을 발견했다.
<Sunny Day>에선 집안에서 안쓰는 물건을 옥션을 통해 팔아 꽁돈이 생긴 것 마냥 비싼 케잌도 사먹고, 피부관리도 받고, 미용실도 다니며 자신감을 되찾게 되며, <우리 집에 놀러 오렴>에선 별거를 하고 있다는 자각보단 독신자가 된 마음으로 하나하나 집을 꾸미기 시작하며 동료들과의 우정도 쌓고, 사랑도 다시 싹트며, <그레이프프루트 괴물>에선 자신이 있는 지구를 담당하는 부업매니저를 상대로 야릇한 상상을 하며 재미를 느끼고, <여기가 청산>에선 회사의 도산으로 실의에 빠지기 보단 하루하루 발전해나가는 음식솜씨에 기뻐하며, <남편과 커튼>에선 남편이 엉뚱한 일을 할 때마다 가슴을 조리면서도 멋진 일러스트를 그려내며, <아내와 현미밥>에선 어느날부터 유명 작가가 되어 로하스에 빠진 젠체하는 사람들을 놀려주기 위해 일필휘지로 소설을 써내려가는 활력소를 찾는, 그런 이야기였다.
뭐, 진짜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고 일주일의 단 하루, 상상속에서 과일괴물로 변신한 남자를 만나는 것은 그냥 기분전환용일테고.. 불황기에 회사가 도산하여 일자리를 잃었다고는 해도 한동안은 살림에 전념하며 내일은 뭘 먹을까를 고민하는 남편의 모습은 오히려 행복해만 보이고, 별거가 오히려 서로에 대한 관심을 다시금 불러오기도 했으며, 남편의 무대뽀적인 성격에 의해 창작의지도 불타오르니 그야말로 갈등이 행복이 되어버리는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과연 우리 주위에 이런 집이 몇이나 있을까? 요즘같은 불황기에 회사가 도산하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육아로 인해 퇴직 후 몇년을 살림을 하던 아내를 단 하루만에 채용하는 회사가 어디에있으며, 요즘같은 불황기에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시작한 사업이 대박이 나는 경우가 흔할까? 거기다 갑자기 유명작가가 되어 어느새 은행잔고가 1억엔이 넘어가는 작가의 모습도 마냥 공감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물론 남편이 아내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이미 제출한 소설을 폐기하고 다시 쓴다는 발상도 딱히 좋지도 않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지만 갈등이 행운에 의해 너무 쉽게 풀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모든 이야기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가족의 무관심으로 옥션에 맛을 들인 뒤 남편도 모르게 남편의 애장품이면서도 창고에 처박힌 기타를 팔고, 자신의 생일날 아침에도 무덤덤한 가족의 모습에 또 다른 애장품마저 몰래 팔려던 아내의 모습을 보며 "저럼 큰일날텐데.."라며 기겁을 하던 중 가족의 사랑에 의해 흐뭇한 결말로 끝맺는 <Sunny Day>는 정말 너무나도 공감되는 이야기였다.. 결혼을 해서 엄마가 되고 아내가 되어 전업주부로써의 삶을 사는 여자에겐 가족외엔 다른 누군가가 생일을 챙겨주는 일이라곤 흔치 않은데.. 당연히 엄마로써 아내로써 서운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가족에게 화나는 것을 우연히 맛 본 옥션으로 푼다는 발상자체가 귀엽고, 결국 가족의 사랑으로 해피엔딩을 한다는 것도 마음에 드는 이야기였다.. 이런 소소한 행복을 그린 이야기를 기대한 탓에 점점 다른 이야기를 읽을수록 실망은 했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는 있는, 정말 술술 읽어버릴 수 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