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3 - 효종.현종실록 - 군약신강의 나라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3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효종하면 북벌, 그리고 현종하면 예송논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다른 역사서를 통해 배운 내용대로라면 병자호란을 겪고, 소현세자가 친청정책을 통해 발전된 청나라의 문물을 배워오려고 했다면 같이 인질생활을 했던 효종은 북벌을 주장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했던 아버지 인조에 의해 소현세자는 독살당했을 수도 있고, 효종은 왕이 되어 북벌정책을 추진하다 사림세력에 의해 독살되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인상깊었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비록 진짜 북벌정책을 시행해 청나라를 무찌르지 못했을지라도 북벌정책을 통해 임금의 힘을 더 강하게 기를 수도 있었을테고 역사도 바뀌지 않았을까하는 마음에 효종독살설에 안타까움을 느꼈었다..  

그런데.. 북벌정책을 도우는 것 같지만 어쩌면 효종은 북벌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 북벌을 추진하는 척하며, 왕위계승의 정통성에 대한 문제를 잠재우려한 것은 아닐까라는 박시백님의 의견에 그럴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서 인질생활을 하며 청나라의 강함을 체험도 했을테고, 청나라에서 조선의 상황을 감시하며 자그만한 일에도 트집잡으며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했던 모습을 보니 확실히 북벌을 정말로 준비하는 것이 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확실히 효종은 "북벌"을 추진한 왕이라는 시각과 실제로는 "북벌"이란 이름으로 왕위계승의 정통성을 입증하려고 한 왕이라고 보는 시각 모두 역사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효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현종"의 경우 예송논쟁이라는 소모적인 논쟁만한 왕이라는 인식이 강한 왕이었다. 하지만 무능력하고 주자보다도 주자의 이론을 받아들이는 송시열을 지나치게 신격화하여 받아들이는 산림들의 지지를 받아들이기위해 예송논쟁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효종의 왕위계승에 적통성이 없다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 산당을 견지하면서도 남인이 산당과 견제할 수 있는 당으로 만들기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던 왕이었다.  

물론 왕가식구들의 부정부패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백성들이 고통을 겪게 만들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군사훈련에도 앞장서고, 편을 가르는 상소를 올리는 신하들에게 벌을 내리기도 하고, 송시열을 충분히 견지할 수 있는 왕권을 다진 것처럼 보였을 때 세상을 떠나버리고야 말았다. 만약 현종이 그의 뜻대로 산당과 남인의 힘을 적절히 균형을 이루도록 만들었더라면.. 당쟁을 통해 자신들만의 입장을 견고히 하려는 신하들이 소모적인 싸움을 하는 조선후기의 우리나라의 역사가 조금은 좋은 쪽으로 바뀌진 않았을까라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덧>> 정말 우리나라의 사대부들을 정확히도 표현하는 문구를 발견했다..  

그러나 조선은 여전히 유자의 나라. 50년도 안 되는 시간동안 두 번의 왜란과 두 번의 호란을 겪으면서 무능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유자들이다. 그들이 이룩해놓은 체제는 허약했고, 대응력은 없었으며, 뻔뻔했다. 그래놓고도 그들은 과거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대신에 과거의 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길로 나아갔다. 힘이 약해 금수와도 같은 오랑캐들에게 무릎을 꿇었지만 정신만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자위했다.   - 50~51쪽

대응력은 없으면서도 뻔뻔하고, 왕에게 올리는 상소는 비현실적인 정세판단에 책상앞에서 나온 관념적인 대책들 혹은 뻔한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는 정확한 표현인 듯!! 이런 사람들로 가득찼던 시대이니 왜란을 겪고서도 배운 것이 없어 또 다시 호란을 겪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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