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도움으로 시나가와 구청사무소에 '마음의 고민상담실'을 열은 지 오늘로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그저 이전에 내가 딴 자격증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돕고자 시작한 상담실이었는데 지나고보니 오히려 나에게 더 큰 활력소가 되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이전의 나는 그저 집에서 청소와 빨래, 설거지, 그리고 끼니때마다 식사준비를 할 뿐 딱히 어떠한 것을 해야할 지 생각도 하지않고, 의욕도 없이 지낼 뿐이었다. 그러던 중 구청 토목과 과장이었던 남편의 도움과 구청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되어 이 곳을 열게되었고, 첫번째 고객이었던 안도 미즈키씨를 시작으로 점점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무력함이 사라지게 되었다..

사람들의 상담내역은 다양했다. 남편과 자식들의 무관심에 하루하루 자신이 죽어가는 것에 위협을 느낀 주부, 대학이란 것에 매력을 느끼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강요에 의해 관심도 없는 공부를 하고 있는 재수생, 결혼에 대해 확신이 없음에도 결혼날짜를 받아놓은 채 고민하는 여성, 회사에 적응하지 못한 채 영업을 핑계로 외근을 나와 상담을 받는 회사원, 갈수록 어려워지는 취직에 아르바이트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프리터 등등 사회에 의해 고립된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의 무관심에 의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의 마음 속 응어리를 풀어주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유도 다양하고, 그들이 받은 상처의 크기도 다양하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성격과 심리상태도 다양하기 때문에 나는 적어도 4주의 기간을 최소한으로, 길게는 2달이 넘는 시간동안 매주 만남으로써 그들의 친구가 되주고, 그들의 힘이 되어주면서 그들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있었다. 물론 단 한 번의 만남만으로 고민이 해결되지 않았다며 더 이상 나를 찾지 않는 사람들도 수두룩하지만, "마음의 고민 상담실"은 이제 명실상부한 시나가와 구청의 하나의 기관이 되었고, 많은 구민들이 상담실을 이용하고 있다. 

 상담을 해주다 보니 아무래도 첫 번째 고객이자 조금은 특이한 해결을 맞이했던 안도 미자키씨의 상담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안도 미자키씨의 경우, 자신의 이름을 계속해서 잊어버리는 문제가 있었고, 그 문제는 미자키씨의 이름표를 시나가와 원숭이가 훔쳐감에 따라 나타난 일이었기에 남편과 구청직원의 도움으로 원숭이를 잡아 이름표를 그녀에게 돌려줌으로써 해결되었다. 이전부터 이름표에 매력을 느끼는 원숭이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 시나가와 구의 하수도에 사는 원숭이를 직접 본 적은 그 때가 처음이다 보니 원숭이와 함께 안도 미자키씨의 고민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고민만큼 독특한 고민 상담을 바로 며칠 전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이번 상담의뢰자는 가만히 앉아있어도 여러 생각이 들어, 도무지 가만히 있지 못한 채 소설을 써야만 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씨였다. 다른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책을 쓰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너무나도 유명한 작가였고, 그의 작품은 매번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수백만부의 책이 팔려나가고 있으니 소설을 쓰면 쓸수록 그에겐 더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병적으로 자신의 이야기에 집착을 하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그의 소설 중에 살인과 같은 범죄를 다루는 추리소설이 없기에 망정이지 그가 추리소설 작가였다면 그는 벌써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소설 속 이야기에 현실성을 추구하고 있었다.

한 예로, 그는 빵가게 이야기를 쓰기 위해 자신이 직접 한밤중에 빵가게를 찾아 헤매이고 다녔으며, 잔디 깎는 이야기를 위해 한 여름 자신의 정원의 잔디를 시작으로 친척들의 잔디를 깎음으로써 소설 속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정도의 일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해변의 카프카>를 쓰기 위해 생선을 한 트럭을 사서 아파트 위에서 뿌려보기도 했고, 살아있는 고양이의 심장을 보기위해 잔인한 짓도 서슴지 않았으며,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우물 속에서 며칠을 지내기도 하고, 스스로 요양원을 찾아가 그 곳에서 연락을 끊은 채 몇 달을 지내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친 적도 있었다. 이정도면 병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정도였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일들을 일부나마 겪음으로써 독자들에게 생생한 느낌을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가족에게 걱정을 끼쳐가며 하는 창작활동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가만히 앉아있을 때에 여러 생각이 들어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그를 어떻게 멈추게 할 수 있을까? 그가 아무리 달리기를 좋아한다고 할지라도 하루종일 달리게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여행을 가서도 또 다른 책을 위해 답사를 하고, 사진을 찍어댈테니 여행 이후가 문제가 되고, 어떻게 해야 그를 진정시킬 수가 있을지 하루종일 고민을 하고 있다. 이런.. 남의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해 열게 된 상담실인데 너무 어려운 문제에 내가 고민을 하게되다니.. 이번 문제는 남편과 구청직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종류의 것인데 어떻게 해야하나? 

우선 이번에 나온 책출간을 축하하며 사인회를 열라고 해볼까? 그의 책은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과 미국에서도 인기가 있으니, 못해도 1~2달은 사인회로 바쁘게 지낼 수 있을테니 말이다. 사인회와 더불어 상실에 대해 이야기한 그의 많은 작품들에 대해 강연회라도 하면 수많은 독자를 만족시킬 수도 있고, 그도 바쁜 생활로 인해 잠시나마 창작활동을 하지 못할텐데 괜찮은 방법이지 않을까? 이건 내가 그의 사인을 원하고, 그의 강연을 듣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생각해낸 방법은 절대 아니다.. 그냥 그가 창작활동과 무관하게 할 수 있는 행동은 없나 싶어 생각해낸 것이다. 물론 일시적인 방법이라고 여겨 그가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우선은 글로부터 그를 떼어놓는게 좋지 않을까싶다. 그의 수많은 독자들이 강연회를 통해 그를 만나고, 이제까지 그의 작품을 통해 궁금했던 것을 모두 질문하고 그가 수없이 답하다보면 자신의 작품에 질리게 되는 일도 생기지않을까라는 기대도 되고..어떻게 해야하나??  

이런 벌써 아침 7시다.. 슬슬 오늘의 고민상담을 위해 준비를 하고 나가야할 시간이다.. 분명, 어젯밤 우리 상담소의 1주년을 맞이해 이제껏 내가 겪은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상담에 대해 회상하며 정리를 하다 잘까했는데 결국 요즘 가장 관심대상인 하루키씨의 걱정만을 하다 날을 새버리다니 아무래도 유명작가인 하루키씨의 방문이 나에게 큰 사건이었나 보다. 오늘은 그가 방문하지 않는 날인데.. 그를 생각하다 다른 고민상담을 엉성히 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고 출근을 해야겠다. 

자.. 그럼 오늘은 어떤 고민 상담이 새로 들어오려나? 저번 주에 예약을 했던 상담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다들 오겠지? 1주년을 맞이한 기념으로 어떤 특별한 것을 해야하나? 

오늘 하루 역시 많은 사람들의 고민 해결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 마음의 고민상담실 " 이란 소중한 공간으로 출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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