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6 - 예종.성종실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6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안동김씨와 풍산조씨가 활개를 쳤으며, 신하들에 의해 왕족이긴 하나 무능력한 인물이 왕으로 추종되었던 조선말기의 순조, 헌종, 철종, 순종을 제외하고, 518년간 27명의 왕이 다스렸던 조선이라는 나라의 왕 중 가장 존재감이 없는 왕은 아무래도 예종이었다. 태조, 정조, 태종은 조선개국이란 커다란 사건과 왕자의 난을 통해, 세종은 아시다시피 만원짜리 지폐에서 매일 볼 수 있으며, 한글과 다양한 업적을 통해, 문종, 단종, 세조의 경우 짧은 통치기간과 왕위다툼에 의해 TV 드라마를 통해 만나기도 했던 그런 유명한 왕이었다.  

또, 좋은 일은 아니지만 폭군이었던 연산군이나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 되었던 중종, 여인천하시대에 희생양이었던 인종과 표독스런 문정왕후의 아들이었던 명종, 그리고 임진왜란을 겪었던 선조와 선조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반정을 통해 쫓겨난 광해군과 광해군을 몰아냈으며 며느리 강빈과 세손들을 죽인 인조,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왕위에 올라 북벌정책을 추진했던 효종과 예송논쟁을 겪은 현종,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남편이었으며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던 숙종, 장희빈의 아들로 노론과 소론간의 싸움에 의해 독살설논란이 있는 경종,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갇혀 죽게만들었으며 탕평책을 시행했고, 오래도록 장수했던 영조와 그의 뒤를 이어 수원 화성을 쌓았고, 과학을 발전시켰던 정조와는 달리 예종은 도무지 어떤 일을 겪은 왕이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않는 존재감이 희미한 왕이었다.  

그리고 존재감만큼이나 재위기간도 너무 짧은 왕이었다. 세조의 아들로 아버지의 뒤를 잇는 강력한 군주가 되려하였기에 대신들과 의논하여 중요한 일을 결정하면서도 틈틈이 그들을 긴장시키는 그런 왕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포부를 펼쳐보기도 전에 병으로 요절을 해버렸다. 1년 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기에 유자광에 의한 남이의 옥사이외에는 별다른 사건도 일어나질 않았으니 "그 유명한 남이옥사", (순오기님의 리뷰를 보니, 남이옥사를 유명한 사건이라고 하고 있다..그리고 실제로도 유명한 사건이다..) 하지만 창피하게도 그 유명한 사건을 기억조차하지 못하는 내게 예종은 희미한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더 이상 예종하면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는 일은 없을테니 결국 이 책을 통해 또 한가지를 배웠을 뿐이다.  

또한, 얼마전 <왕과 나>를 통해 드라마화되기도 했던 성종시대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익숙한 부분이 많았다. 단 한가지 의외였던 부분은 성종이 성인이 되기전까지 수렴첨정을 하였던 정희왕후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는 수렴첨정 하는 왕비들의 모습이란 깐깐하기 그지없는, 그리고 권력을 탐하는 여자들이었다. 성종의 어머니로 권력을 잡기위해 그 시대 최고의 권력자였던 한명회와 손을 잡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며느리인 폐비윤씨를 쫓아내는데 한몫을 하였던 인수대비나 중종의 부인으로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의붓아들을 독살시킨 혐의를 받고 있는 문정왕후의 끊임없이 정치에 관여하고, 권력을 휘두르던 모습이 각인된 탓이다.  

하지만 정희왕후는 그런 왕비들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성인이 되기전의 성종을 도와 수렴첨정을 하였지만, 목표는 단 하나 "손자 성종을 위하여"뿐이었으므로 잘된 것은 손자의 덕, 잘못된 것은 자신의 탓으로 하며, 손자인 성종이 다루기 힘든 세조시절 일어났던 역모사건에 대해서도 미리 해결해준 뒤 성종이 성인이 되자마자 수렴첨정을 그만두고, 그 후 일절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던 왕후였다. 박시백님의 그림에선 선글라스를 낀 채 보디가드처럼 어린 성종을 보호하던 정희왕후의 모습은 어린 왕에게 있어 그 누구보다 힘이 되었을 왕후의 모습을 너무나도 잘 표현한 그림이었으며,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이야기였기에 이번 편에 있어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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