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간의 깊고 깊은 원한....

악마의 공놀이 노래 ㅣ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7년 7월

탐정이란 범인이 저지른 사건을 뒤쫓아가기만 하는 존재라고 얘기했던 어딘가에 등장한 인물이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탐정이란 사건이 벌어지기전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약간의 낌새를 눈치챌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건이 벌어진 후 탐정은 그 장소에 오기에, 사건이 벌어지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고, 단지 그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것에 주력할 뿐이다. 물론 연쇄살인범과 같이 돈이나 그저 쾌감을 누리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같은 경우에야 사건이 벌어진 후에 그 범인을 찾더라도,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기에 탐정이나 형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들이 있기에 또 다른 사건을 막을 수 있기에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원한도 그럴까?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벌써 자신의 원한을 극단적이긴 하지만 살인이라는 방식으로 표출한 상태이고, 더 이상 원한맺힌 자는 존재하지 않을텐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정말 탐정이란 그저 범인이 저지른 사건을 뒤쫓아가는 존재라는 말은 서글프지만 사실인 것같다.. 이미 벌어진 사건이고, 그 사건을 수습하는 것외엔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니 말이다.. 그리고 <악마이 공놀이 노래>에 나오는 긴다이치 쿄스케는 너무나도 전형적으로 사건을 수습하는 모습만을 보일 뿐이었다.. 마지막에 단 한건의 사건이 그의 노력으로 미수로 그치기는 했지만 그 전에 이미 5명의 사람이 죽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쿄스케는 촌장이 사라진 후 일어난 첫번째 사건이후 벌써 범인에 대해 눈치채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저 방관만 하며, 모든 사건이 일어난 후 그 사건의 배후와 트릭을 설명해줄 뿐이었다.. 

에르퀼 푸아로도 사건을 해결하는 것보다 사건을 예방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던 것처럼 확실한 증거없이 범인을 몰아세우지는 못했을지라도, 그 유명한 탐정이니만큼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사건을 막을 수 있지는 않았을까? 친구의 죽음에 목놓아 울고, 지독한 원한으로 살인마가 되어온 범인일지라도 사람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던 긴다이치 쿄스케의 손자로 활약하는 소년탐정 김전일은 어떻게라도, 단 한건의 살인이라도 막으려고 그렇게 고군분투하는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사관을 방관하기만한 긴다이치 쿄스케보단 김전일이 더욱 사람냄새가 나는 그런 사람같으며, 그렇기에 만화책일지언정 소설책 못지않게 재미를 주고, 끊임없이 사랑받는 것이 <소년탐정 김전일>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등장인물이 너무나도 복잡하다는 것이다.. 문제점이라고 하니 이상하지만,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책의 경우 앞장에 인물소개를 싫어주는 경우도 있고, 인물관계도를 보여주는 경우도 있는데 이 책은 그런 세심한 정성따윈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유카리니 치에코, 야스코, 사토코라는 수많은 등장인물과 그들이 사는 집에 붙은 저울집이니 하는 옥호에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정말 다른 분의 말씀대로 가계도와 인물관계도를 그려서 옆에 두고 읽어야 할 정도로 너무 복잡하였다.. 그런 복잡함과 더불어 23년전의 사건과 이어지는 연쇄사건이고, 그저 방관만하는 쿄스케덕분에 초반엔 누가 범인일지 감도 못잡았으니 말이다.. 다만 경부가 의심한 살해당한 겐지로가 겐지로가 아닌 '온다 리쿠조'가 아닐까라는 사실을 보며, 나 역시 의심을 품게되긴 했지만.. 중간중간 방해하는 듯한 가짜 단서들에 한참을 헤매이게 되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