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등어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내려간 집의 책장에서 우연히 뽑아든 책이 바로 <고등어>다. 1994년에 출간된, 아직 내가 초등학생일때부터 우리집 책장에 꽂혀있던 노르스름하게 바랜 책.. 15년이란 세월을 머금은 만큼 책은 사람의 손을 많이 타서 때가 탄것이 아닌 세월이 무게속에 조용히, 그리고 확연하게 노란 종이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세월의 흔적은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정가 5,500원이란 숫자에서, 그리고 나와는 상관없는 듯한 80년대의 노동운동과 그것을 아파하는 90년대의 서른살쯔음의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대학교를 다닐때에만 해도 학생운동이라는 것이 거의 사라져있었다. 아니 있다고 해도 해마다 오르는 등록금인상에 반대하기 위해 현수막을 걸고, 하루종일 학관앞에 모여 앉아서 등록금인상반대를 주장하는 학생회와 학생회와 관련된 학생들이 하는 운동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런 운동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차피 한번오른 등록금은 인하하지않는다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수업을 빠지고 참여하는동안 아깝게 날라가는 등록금과 학점에 연연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그 규모도 점점 작아졌다.
그런 시대를 살아온 나에게 80년대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대학생들이 운동을 하고, 그 운동을 하며 어떤 강압적인, 그러나 천수를 누릴 어떤 놈에 의해 철저히 고문을 당해야만 했던 그런 학생들의 모습은 낯설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운동, 아니 파업은 계속되고 있다. 예전의 그 운동에서 시작한 파업은 하루가 멀다하고 많은 회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쩔 때에는 지하철노조, 어쩔때에는 현대자동차, 또 어느때에는 화물연대.. 그들말처럼 여전히 우리 세상은 가진자들에게만 살기 수월하고, 가지지 못한 자들은 힘들게,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한 것까지 힘들게 얻어야만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 운동들이 다 옳은 것일까? 물론 그저 운동을 한 이유로 모진 고문끝에 정신줄을 놓아버린 은섭이나 작은 이유하나로 죽임을 당한 경운이, 그리고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울부짖은 전태일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삶이 조금은 편안해졌기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솔직히 내 눈에 요즘의 파업은 너무나 비정상적일때가 많다..
이 책의 명우와 은림이가 살아온 시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위험한 도장공장에서 파업을 하고, 그 파업을 강제진압하는 경찰의 모습을 보며 솔직히 저 공장이 폭발하면 어쩌려고 저러지라는 생각밖에 들지않았다.. 쌍용자동차의 부당한 해고니뭐니하는 소리보단 화면에 비춰지는 위험에 오히려 그만들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그들나름대로 자신들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이니, 아니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궁지에 몰려 벌인 행동이기에, 그들의 행동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었기에 시대를 역행한 듯한 정부의 진압에 분개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난 그저 그들이 잘못될까.. 그리고 그저 경찰이란 이유로, 상부의 명령이란 이유로 그 곳에 서있는 경찰들이 잘못될까 그런 시각에 그곳에서의 파업자체가 좋게보이지 않았다.. 비단 나만 그럴까?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그런 사태를 보며, 그리고 점점 후퇴하는 민주주의라며 촛불을 들고 서울광장에 모일때 그런 모습을 TV로만 보는 또 다른 수백만명의 사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이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시민운동, 그리고 사회운동은 우리와는 조금은 먼 곳에 있지않나 싶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을 했음에도 여전히 멀어만 보이는, 그리고 이룩하지 못한 이상이기에 은림과 명우는 세월이 훌쩍 지난 후에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놓지 못한 것이 아닐까? 은림이 나타난 후 우유부단하게 여경을 대하는 것도, 은림이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가 잃었다는 사실을 한참후에 알게된 후 더 은림에게 얽매이는 듯한 명우의 모습은 그저 한때 사랑했던,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기에 그러는 것이 아닌 자신을 잡고있는 과거에 의해 그저 그 자리를 맴돌듯 은림의 근처에서 다른 사람을 상처주며 맴도는 것이 아닐까싶었다.. 노동자도 아니면서 노동자들을 위해 소리치던 그가 이젠 부르주아들의 자기자랑 놀이에 의해 먹고사는 현실을 생각하며..
하지만 이런 짧은 생각외엔, 명우와 은림, 그리고 그들이 한 운동과 그들의 생각.. 그리고 그것에 대한 공지영 작가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80년대 내가 대학생으로 그런 사회를 직접 체험하지 못했기에, 90년대 그런 운동을 한바탕 겪어온 30대들의 후회를 모르기에, 그리고 지금은 50대의 나이가 되었을 그들이 또 어떤 생각을 할지 도무지 감이 안잡히기에.. 난 이 책의 일부분만을 감상할 수 있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