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외 24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정말 문학사상사는 어쩔수가 없다.. 어쩜 이렇게 촌스럽게 표지디자인을 하는지.. 물론 1996년에 출간되었다는 것을 보면 그 당시에는 그다지 촌스럽지않은 표지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14년이나 흐른 2009년이다. 아직도 여전히 그 표지를 그대로 쓰는 것은 좀... 물론 책 표지만 바꾸고 몇천원씩 책값을 올리는 것도 별로지만 이런 표지는 정말 책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해서 아쉽다.. 그러고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중엔 표지가 이쁜 책이 없다.. 요즘나오는 책들은 다 자그만한 양장본에, 중간중간 들어간 컬러삽화, 그리고 관심을 끄는 표지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런 책과 비교해보면 하루키의 책은 무식할만큼 큰 책에, 약간은 허접해보이는 표지이다. 하지만 그게 또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집에 묵혀두었던 오래된 책을 읽는 듯한 느낌과 더불어 요즘책 답지않게 아주 저렴한 가격이라는 점이다.. 요즘 어지간한 책들은 다 10,000원이 넘는데 반해 400여페이지가 넘는 이 책이 여전히 8,000원이니 말이다.. 

이 책엔 총 25개의 단편이 수록되어있다. 창해의 <회전목마의 데드히트>에서 읽었던 풀 사이드,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비 그치기를 기다리며, 야구장, 사냥용 나이프, <개똥벌레>에서 읽었던 헛간을 태우다,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춤추는 난쟁이, 세 가지 독일 환상, <빵가게 재습격>에서 읽은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 <중국행슬로보트>의 오후의 마지막 잔디밭, 땅속의 그녀의 작은 개를 제외한 총 13개의 단편은 처음 만나는 작품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요즘 출간되기 시작한 온다리쿠의 책들이 얼마나 좋은지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출간되기 시작했기에, 여러 출판사에서 그녀의 책을 출간하고는 있지만 어떤 단편이 어떤 잡지에 언제 기고가 되었었는지 언급이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출판사라 할 지라도 서로 겹치는 단편이 없게 출간이 되니 말이다.. 솔직히 하루키의 단편이 창해 출판사의 이야기와 겹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출판사이기에, 서로 다르게 계약을 했을 수도 있기에 독자의 입장에선 별로 좋진않지만 그래도 겹치는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중국행 슬로보트>와도 2편의 이야기가 겹치는 것은 좀 그렇지않나싶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며 정말 울며겨자먹기로 책을 산 느낌이니 말이다.. (예전에 박완서의 책을 읽었을 때도 그렇다.. 신작 2편을 제외하곤 다른 책과 똑같은 이야기가 그대로 실린, 작가의 들어가는 말조차도 유사한, 출판사와 표지만 다른 두권의 책을 보며 얼마나 씁쓸했던지...) 겹치지 않는 단 한편의 단편을 위해 다른 읽고 싶은 책을 포기한 채 이 책을 샀으니 정말 울며겨자먹기다..  

그래도 이 책은 13개의 새로 읽는 단편들이 수록되어있으니 1편의 새로운 단편만 수록되었던 중국행 슬로보트에 비해 매우 만족한다.. 그리고 새로운 단편들은 처음 만나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전혀 새로운 느낌이 아닌, 어디선가 읽은 듯한 아련한 느낌이 드는 이야기들이었다. 아마도 다른 작품과 이어지는 듯한 분위기때문일것이다. 캥거루 구경하기 좋은 날씨같은 경우는 캥거루 통신과 같이 캥거루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캥거루 통신이 캥거루를 보고 온 날 쓰는 편지였다면 캥거루 구경하기 좋은 날씨는 캥거루를 구경하고 있는, 말하자면 선행사건 같은 느낌이다.. 만약 두 이야기가 한 권의 책에 이어져있었다면 조금 더 색다른 분위기를 느끼며 읽었을텐데 서로 다른 책에 실려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녀의 거리와 그녀의 양과 같은 경우는 <양을 쫓는 모험>에서 내가 찾아간 삿포로의 한 마을이 떠오를 뿐이었다.  

처음 등장하는 소재로는 강치도 있었다. 표범보다 좀 더 큰 크기로 사람처럼 말을 하고 사람의 명함을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는 강치말이다.. 명함을 통해 사람의 모든 것을 알게되는 강치는 어쩐지 사람의 이름표를 훔쳐 그 사람의 존재를 훔쳐갔던 사나가와 원숭이와 비슷한 속성을 지닌것 같으면서도 낮잠과 수영, 마작, 그리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엔 강치축제를 열어버리는 강치라는 존재는 왠지 친숙한 이미지였다. 그런 강치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강치축제, 강치, 월간 '강치문예'라는 제목으로 이 책에만 3편이 수록되어있었다. 어쩐지 그 친숙함과 약간의 귀염움을 느끼는 때문인지 양사나이처럼 다른 단편집에서,그리고 혹시 다음에 나올지도 모르는 장편소설에서 작은 역할일지라도 다시 만나고 싶은 존재였다..    

다양한 단편을 읽으며 장편에서 느끼지 못하는 매력을 느끼고, 하루키의 글솜씨에 허우적대며 체호프에게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짧은 이야기에 수모를 겪었다는 체호프가 열성적으로 단편을 쓰지않았다면 지금의 하루키의 단편들은 없었을테니 말이다.. 하루키의 장편이 많은 사건과 감정의 흐름을 그려내고 있다면, 하루키의 단편은 그의 번뜩이는 상상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때문에 또 다른 느낌을 주며, 그렇기에 하루키의 책은 단편이든 장편이든 그 매력이 너무나도 다르다.. 만약 체호프가 없었더라면.. 정말 하루키의 단편이 없는 세상, 그리고 세상의 모든 재미난 단편들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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