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행 슬로보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문학사상사의 하루키의 단편집을 읽다보면 조금은 아쉬운 느낌이 들 때가 많다. 표지가 이쁘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그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아마도 다른 책과 겹치는 단편들 때문일것이다. <회전목마의 데드히트>, <개똥벌레, 헛간을 태우다, 그 밖의 단편>, <빵가게 재습격>과 같이 창해에서 나온 단편집과 문학사상사의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걸작선>,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외 24편>이 서로 겹치고, <중국행 슬로보트는 총 7개의 단편 중 무려 6개의 단편이 겹쳐지기에 단 1편의 이야기를 위해 이 책을 읽고 있을 뿐이다... 6개의 단편이 겹쳐지는 이야기였기에 그냥 다른 한 편의 이야기만 읽어도 상관은 없겠지만.. 다시 읽는 느낌 또한 감회로왔다. 

원래 고전의 경우,  여러명의 번역자에 의해 번역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고전을 읽을 때에 보통은 한 명의 번역자에 의한 이야기만 읽었거나 너무 오래전에 읽어 번역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 하루키의 책은 연달아 다른 번역자의 같은 이야기를 읽어서인지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특히나 이번엔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외 24편>과 <중국행 슬로보트>를 함께 읽었기에 번역의 차이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두 책에 겹쳐지는 첫번째 이야기는 한 남자가 애인에게 채인 후 잔디깎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겪은 일에 대한 "오후의 마지막 잔디밭"이었다. 아예 한줄한줄 비교해가며 읽어보니 "14~15년전"이라 번역된 것을 다른 책에선 "십사년이나 십오년전"으로 번역하고, 문장속의 접속사 "이나"를 "인가"로 번역한 차이정도로 조그만 차이도 있고, "조금 앞뒤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런 시대다"를 " 약간 이전이나 이후인 것 같기도 하지만, 어째듯 그런 시대였다"로 의미는 같지만 느낌이 다른 번역도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번역의 느낌이 작품전체를 좌지우지하진않았다. 그저 다른 느낌일 뿐이었다. 하지만 번역가에 의해 어떤 식으로 대화체가 번역되는 지에 따라 느끼는 분위기는 너무나도 달랐다.  

아르바이트생인 "나"에게 존대말을 하던 아주머니의 모습은 단정하게 생겼지만 호감이 가지않는, 하지만 남편을 잃고 약간의 슬픔에 젖어사는 그런 아주머니였다면 "나"에게 반말을 하던 아주머니는 같은 외모에, 같은 슬픔을 지녔지만 술을 마시긴 하지만 슬픔에 젖어있기보단 담담히 살아가는 그런 아주머니였다.. 그렇기에 내 상상속의 두 아주머니는 전혀 다른 두 명의 사람이었다. 분명 같은 아주머니일텐데 번역의 차이에 의해 두 사람의 성격이 좌지우지되는 느낌이었기에, 왜 사람들이 어떤 번역가의 번역이 좋다고 평하는지, 번역본보다 원서를 읽으려고 하는지 조금은 알게되는 것 같다.. 나는,,, 두 책의 번역자인 유유정씨와 김춘미씨 중에 어떤 번역이 좋냐고 물어본다면..아마도 그때그때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먼저 읽었는지에 따라 바뀔 것 같다... 먼저 읽은 번역가의 글이 남아있기에 성격이 다른 듯 보이는 등장인물에 의해 뒤에 읽은 번역가의 글은 어쩐지 어색한 느낌이 들기때문이다.. 그것만 빼곤 두 명의 번역자체는 별로 다른 점이 없기에 딱히 싫지도, 좋지도 않은, 그저 원서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읽을 정도의 실력을 쌓아 무라카미 하루키를 직접 느끼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이런 번역의 차이때문인지 같은 이야기를 읽어도 또 다른 느낌이 들었기에, 같은 이야기를 읽을 때의 아쉬움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런 아쉬움이 사라짐과 동시에 화룡점정이랄까 마지막에 수록된 처음 읽는 <시드니의 그린스트리트>에 의해 이 책에 행복감을 느끼며 책장을 덮게 되었다.. <시드니의 그린스트리트>는 얼마전 읽은 <양을 쫓는 모험>과 <댄스댄스댄스>에서 만났던 양사나이와 양박사가 등장한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이 많은 돈을 저금한채 자신에게 재미있어보이는 일만 수락하는, 결국 별다른 일을 하지않는 사립탐정과 그가 매일 들리는 피자집의 웨이트리스 찰리가 나올 뿐이다.. 양의 귀를 찢어간 양박사를 찾아 자신의 귀를 돌려받으려는 양사나이와 양사나이만 보면 주체할 수 없는 욕구로 양의 귀를 찢는 양박사.. 양사나이는 이전작품 속의 양사나이와 비슷하면서도 비슷하지않은(내가 아는 양사나이라면 귀가 찢어졌다해도 남에게 부탁하진않을 것 같다.. 자기가 직접 찾지..) 양사나이였고, 양박사는 양사나이에 질투를 하고 있는 그런 사람일 뿐이었다.. 같은 듯, 다른 듯한 등장인물들이지만 이미 여러 이야기에 등장해서인지 괜히 좋아지는 캐릭터다.. 한 여름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도 봉제인형을 뒤집어 쓴 듯한 양의 가죽을 입고, 귀가 찢어졌다고 슬퍼하는 양사나이를 과연 누가 좋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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