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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하녀 마리사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고래>를 통해 천명관작가님의 글을 처음 읽은 뒤, 우리나라에도 이런 글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었다. 배경은 분명 한국, 그리고 해방쯤부터 70~80년대인 것 같은, 한 도시와 흥망사와 금복과 춘희의 삶이 그려져있지만 여자가 남자가 되고, 죽은사람이 살아돌아오는 이야기가 물흐르듯 술술 흘러가기에 기묘한 느낌이 들면서도 독특한 분위기의 이야기였기에 극찬을 하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처음 작품활동을 시작한 <프랭크와 나>는 아직 단행본으로 출간되지 않았지만 다른 작품인 <유쾌한 하녀 마리사>나 읽자 하고 이 책을 들었는데.. <유쾌한 하녀 마리사> 뿐만 아니라 <프랭크와 나>를 비롯한 총 11편의 이야기가 수록된 단편집이었다. <고래>가 장편소설로 꽤 많은 분량이었기에 무심코 이 책도 장편집이라 생각한 내가 바보긴 하다.. 그래도 한번쯤 읽어보고 싶던 <프랭크와 나>로 시작되고 있기에 너무 행복할 뿐이었다.
<고래>에서처럼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진 않았다. 어쩌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듯한,, 실직 후 자신의 친척과 사업을 하기위해 외국으로 가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대신해 마트에서 돈을 버는 주부, 처제와 바람을 피는 형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주말농장에 가고, 아버지 산소에 성묘를 가며, 골프장에서 골프공을 줍고, 한순간에 노숙자로 전락한 이야기 등등 어떤 이야기는 한국에서 어떤 이야기는 외국에서 벌어지는 듯한, 그러면서도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듯한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로 끝을 맺었다면 아마도 난 이 책을 전부 읽지도 않은 채 덮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천명관의이야기는 평범함 속에 또 다른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다.
집안 사정은 생각지도 않은 채, 토론토에 갈 비행기표를 사기위해 빌린 돈으로 실컷 쇼핑을 하고, 영어회화를 공부한다면서도 특유의 두리뭉실함으로 대충 넘어가고, 토론토에 가서도 프랭크를 제대로 만나지도 못한 채 고생하고, 만나서도 문제가 생기고, LA의 유명한 갱이 프랭크를 죽이러 오질 않나 그 상황에서 한국의 가족들이 얼마나 어려운 생활을 할 지는 모른 채 계속해서 돈을 보내달라는 철부지 남편의 모습이란.. 그리고 그렇게까지 일이 꼬이고 꼬이는 것을 보니 어이없는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이런 어이없는 웃음을 간직한 채 읽은 유쾌한 하녀 마리사의 반전은 이미 눈치챘지만 그래도 독특한 분위기에 반했으며, 13홀의 이전에 물에 빠져 죽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걱정에 휩싸이던 나의 걱정이 다른 모습으로 드러났을 때의 섬뜩함이란...
물론 세일링이나 농장의 일요일같이 이해할 수 없는, 공감되지않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원래 단편집의 특성상 모든 작품이 마음에 들 순 없으니 이해하는 편이었다. 몇몇 이야기를 제외하곤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천명관의 <고래>와는 또 다른 느낌을 전해주었기에 그 나름 매력이 있었으며 이 이야기 역시 술술 읽히기에 읽는데 전혀 고생스럽지않은 책이었다.